2026년 03월 05일(목)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김동관이 설계한 한화의 '방산 생태계'

전쟁이 길어질수록 승부는 무기 성능 자체보다, 그것을 얼마나 오래 만들고 제때 보급하며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집니다. 중동과 유럽의 긴장이 다시 높아지는 국면에서 각국이 방위비를 늘리고 장거리 화력과 군수 보급 체계를 다시 손보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제 전쟁 억지력은 단순히 무기 보유 숫자가 아니라 생산과 정비, 납기와 후속 지원까지 포함한 산업 기반의 문제로 완전히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한국 방산에 구조적인 기회를 열어주고 있습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정리한 2020~2024년 국제 무기 거래 흐름을 보면, 한국은 세계 10위권 수출국으로 올라섰고 점유율도 2%대까지 커졌습니다. 특히 유럽향 비중이 높아진 것은 '당장 받아 전력화할 수 있는 공급자'에 대한 수요가 전면에 부상했기 때문입니다.


이 흐름의 중심에 한화가 서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26조 6천억원, 영업이익 3조 300억원을 기록하며 실적 기록을 다시 썼습니다. 지상방산의 고성장에 한화오션 편입 효과가 본격 반영되면서 육상 화력과 해양 역량이 동시에 돌아가는 통합 구조가 손익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시장의 재평가를 이끌고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다연장로켓 천무 /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에어로스페이스 다연장로켓 천무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핵심은 수출의 '질'이 바뀌었다는 데 있습니다. 구매하는 나라들이 요구하는 것은 이제 완제품 납품으로 끝나지 않고, 현지 생산과 정비 체계, 부품 조달망, 성능 개량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교육훈련과 탄약 보급 계획까지 묶어서 가져오라는 주문입니다. 


통합군수지원(ILS) 계약 구조가 중요해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장비를 들여오는 순간부터 '가동률'과 '정비 리드타임'이 안보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화가 최근 '납기'만큼이나 '운영지원'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입니다. 무기 경쟁이 아니라 운영 체계 경쟁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 수주는 그 상징입니다. 올해 초 노르웨이 국방부는 190억 크로네(약 20억달러, 한화 약 2조 9400억원) 규모의 장거리 화력 사업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천무를 최종 선택했습니다. 16대 발사대와 유도탄, 통합군수지원이 포함된 약 9억 2200만달러(약 1조 3600억원) 규모입니다. 


노르웨이 정부가 직접 밝힌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최대 500km 사거리 충족, 가장 빠른 납기, 그리고 폴란드 협력을 통한 유럽 공급망 보장까지. 미국 록히드마틴의 하이마스를 제친 것은 성능 자체보다 전체 공급 역량이 통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확장의 뿌리에는 길게 이어진 투자 축이 있습니다. 2014~2015년 모두의 우려 속에서도 방산의 미래를 내다본 김승연 회장의 혜안과 뚝심 있는 삼성 빅딜이 분명한 출발점이었습니다. 이후 10년간 R&D와 생산역량, 해외 마케팅과 현지 협력망에 자본을 어떻게 배치했는지가 오늘의 경쟁력을 만들었습니다.


김동관 부회장 / 뉴스1김동관 부회장 / 뉴스1


최근 한화가 방산·조선·해양·에너지 축을 더 선명하게 정렬하고 생산-정비 체계를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공급망 재설계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같은 연장선입니다. 미국 필리조선소 투자 계획 역시 동맹권 내 조선·정비 인프라를 확보해 해양 분야의 유지·보수와 공급망 리스크를 함께 관리하려는 장치로 읽힙니다.


이 대목에서 김동관 부회장의 역할이 두드러집니다. 김 부회장은 지상 화력·해양·우주·현지 생산·유지보수 역량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해 생산-납기-현지화-운영지원 전체를 묶어 파는 구조로 사업 축을 재배열하고 있습니다. 개별 수주를 좇는 전략이 아니라, 지정학적 수요의 변화와 계약 조건의 진화를 읽어 한화 전체를 맞추는 실행형 전략가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가 군수산업의 중요성을 다시 키우는 지금, 시장은 더 이상 '누가 더 비싼 무기를 만드느냐'만 보지 않습니다. 누가 더 오래 만들 수 있고, 더 빨리 보내고, 더 넓은 지역에서 유지할 수 있느냐를 봅니다. 그 기준에서 한화는 단순 방산 제조사를 넘어 한국 방위산업의 산업 기반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체급을 키우고 있습니다.


천검 운용도 / 한화에어로스페이스천검 운용도 / 한화에어로스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