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 회장이 취임 이후 꾸준히 추진해 온 사업 체질 개선이 숫자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가전과 통신 등 소비자 중심 사업으로 성장해 온 LG가 전장, 배터리, 인공지능(AI) 인프라 등 기업간거래(B2B) 중심 구조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미래 성장 기반을 본격적으로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LG유플러스, LG CNS 등 주요 계열사의 지난해 B2B 매출은 총 127조 7천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2021년 111조 7천억원과 비교하면 16조원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같은 기간 전체 매출에서 B2B가 차지하는 비중은 63%에서 67%로 상승하며 그룹 창립 이래 처음으로 3분의 2를 넘어섰습니다.
B2B 매출의 성장은 숫자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구조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B2B 매출이 연평균 3.5% 증가하는 가운데서도 B2C 매출은 0.1% 감소했을 뿐입니다. B2C 매출이 줄어 B2B 매출 비중이 커진 게 아닌 것입니다. 소비자 사업이 유지되는 가운데 산업 고객 중심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며 그룹의 수익 구조가 구조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뉴스1
이 같은 변화는 구 회장 취임 이후 추진된 선택과 집중 전략과 맞닿아 있습니다. LG는 스마트폰과 태양광 등 수익성과 경쟁력이 낮은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전장, 배터리, 첨단소재, 센서, 디스플레이 등 미래 산업 밸류체인에 역량을 집중해 왔습니다. 가전 중심의 전통적 제조기업에서 모빌리티와 에너지, 데이터 인프라를 공급하는 산업형 기업으로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실제 대표적인 B2C 기업으로 분류되던 LG전자도 사업 포트폴리오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LG전자의 B2B 비중은 2021년 27%에서 지난해 36%까지 상승했으며, 회사는 2030년까지 이를 45%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자동차 전장(VS), 냉난방공조(HVAC), 스마트팩토리, 데이터센터 솔루션 등 기업 고객 대상 사업이 새로운 성장 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사에서도 이러한 방향성이 반영됐습니다. 지난해 정기 인사에서 은석현 LG전자 VS사업본부장과 이재성 ES사업본부장이 나란히 사장으로 승진했고, 문혁수 LG이노텍 대표 역시 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모두 전장, 에너지, 부품 등 B2B 핵심 사업을 이끄는 경영진으로, 그룹의 미래 수익 구조가 산업 고객 기반 사업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인사라는 평가입니다. 구 회장이 얼마나 미래를 내다보는지 알 수 있다는 평가가 인사 당시에 나온 바 있습니다.
LG는 계열사 역량을 결집하는 '원 LG(One LG)' 전략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과거 계열사별로 개별 영업을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배터리와 전장, 디스플레이, 전자부품, IT 인프라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글로벌 고객사에 통합 제안하는 방식입니다.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함께 참여하는 '테크데이'를 개최하는 등 수주형 영업 모델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 사진제공=㈜LG
이 전략은 실제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LG는 2024년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를 시작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을 확대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2조원 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AI 데이터센터 분야에서도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 LG CNS가 협력해 인도네시아에서 약 1천억원 규모 사업을 수주하는 등 계열사 간 시너지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B2B 중심 구조가 외부 경기 변동에 대한 대응력을 높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소비자 수요에 크게 좌우되는 B2C와 달리 B2B 사업은 장기 계약 기반으로 매출 예측 가능성이 높고, 기술 진입장벽이 형성되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LG는 단순히 사업을 늘린 것이 아니라 매출이 발생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며 "가전 중심 기업에서 산업 생태계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 전환이 상당 부분 성과를 내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비즈니스 포럼을 마친 후 대화하고 있다.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