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3일(화)

"'상주'가 설거지까지 하라고?"... 정부, 장례식장 '다회용기 사용 의무화' 추진

정부가 탈플라스틱 정책의 일환으로 전국 장례식장을 대상으로 다회용기 사용 의무화를 검토·추진하면서, 현장 부담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장례식장은 상주와 유족의 정신적·육체적 부담이 큰 공간인 만큼, 다회용기 사용이 확대될 경우 그 책임이 사실상 상주에게 전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23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수립 위한 대국민 공개논의'를 통해 장례식장 내 일회용 컵·용기 사용을 줄이고, 다회용 서비스로 단계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정부안에 담아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는 2030년까지 폐플라스틱 배출량을 전망치 대비 30% 이상 줄이겠다는 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부가 장례식장을 정책 대상으로 주목한 배경에는 일회용품 감축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정부에 따르면 전국 장례식장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접시 수는 연간 약 4200만개로, 국내 전체 사용량(약 2억1000만개)의 20%에 달합니다. 다회용기 전환만으로도 단기간에 가시적인 감축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실제 서울에서는 일부 대형병원 장례식장을 중심으로 다회용기 사용이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서울 소재 병원 5곳의 장례식장이 서울시에 일부 비용 지원을 받아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줄인 일회용품 쓰레기는 522t 정도로 알려집니다. 정부는 이러한 시범 사업 성과를 토대로 제도 확대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125125125ㅇㅇ.jpg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다만 문제는 정책의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의 책임 구조가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 장례식장은 일반 음식점이나 카페와 달리,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상주와 유족이 깊은 슬픔과 혼란 속에 놓이는 공간입니다. 


조문객 응대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다회용기 회수와 세척, 관리까지 신경 써야 한다면 "상주에게 설거지까지 요구하는 셈"이라는 반발이 나옵니다.


수도권의 한 장례식장 관계자는 "다회용기를 쓰려면 세척·보관 시설과 인력이 필수인데, 상당수 장례식장은 이런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다"며 "제도만 앞서가면 비용과 운영 부담이 장례식장이나 상주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위생 관리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도 명확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현재 장례식장 다회용기 사용은 의무 사항이 아닙니다. 2023년 말 기준 전국 장례식장 1076곳 가운데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곳은 114곳(10.6%)에 그칩니다. 정부 역시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당장 일괄 의무화를 적용하기보다는 시설·규모에 따른 차등 적용과 단계적 확대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있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측은 "대국민 토론회에서 수렴된 의견을 종합하여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의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내년 초에 관련 업계 등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및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父 장례식장서 말다툼하다 여동생 넘어뜨려 숨지게 한 오빠...징역 2년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gettyimagesBank


환경 보호라는 정책 방향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장례식장처럼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공간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는 논란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다회용기 사용을 확대하려면 상주가 아니라 장례식장 운영 주체나 전문 업체가 책임지는 구조부터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국민과 함께 만든 탈플라스틱 정책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정책이 현장의 현실과 괴리된 채 추진될 경우, 공감보다는 반발이 먼저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후속 설계가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