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서울 중구 본점 4층 집무실에 처음 자리를 맡던 때. 금융권은 '절반의 기대, 절반의 의심'으로 임 회장을 바라봤습니다. 관료 출신 회장이 지주사 수장을 맡으면 통상적인 구호 몇 마디를 거쳐 무난하게 임기를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시점, 임 회장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습니다. 최대 실적, 주가 두 배, 포트폴리오 재편, 글로벌 ESG 최고등급. 우리금융이 지난 10여 년 동안 풀지 못한 과제를 단숨에 실제 성과로 전환시켰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임 회장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숫자입니다. 우리금융은 올해 3분기 순이익 1조원을 넘겼고, 1조 2444억원을 찍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37.6% 증가한 수치이며, 창립 사상 최초의 분기 수익 1조 돌파입니다. 1~3분기 누적 순이익도 2조 7964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습니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 뉴스1
임 회장이 취임하던 해인 2023년의 순이익은 2조 5167억원, 2024년에는 3조 860억원으로 23% 넘게 증가했습니다. 올해 역시 전년 실적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됩니다. '다른 4대 금융지주와의 어깨 맞대기' 목표가 가시적 현실로 전환되는 그림입니다.
주주가치 역시 지난 2년 반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금융지주 주가가 늘 할인된 평가를 받던 시기에도 우리금융 주가는 정반대의 궤적을 그렸습니다. 임 회장이 취임하던 2023년 3월 24일 주가는 1만1010원이었고, 올해 12월 초순 2만 7천원대까지 올라 약 140%의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상승률 1위이며, 금융권에서도 크게 놀라고 있는 수준입니다. 배당 역시 꾸준했습니다. 2021년 900원이었던 주당 배당금은 2024년 1200원으로 높아졌고, 2023년부터 분기배당을 도입하며 안정적 현금흐름을 시장에 제시했습니다. 자사주 매입·소각과 같은 적극적 카드를 병행하며 '임종룡 체제의 핵심은 밸류업'이라는 메시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조직의 뼈대도 달라졌습니다. 임 회장이 취임하던 당시 우리금융은 사실상 '은행 원바디' 그룹이었습니다. 2023년 기준 그룹 순이익에서 우리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99.9%에 달했습니다. 계열사는 많았지만 실질적으로 이익을 내는 축은 은행 하나뿐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따라붙었습니다.
임 회장은 이 구조를 정면으로 다시 짰습니다. 우리종합금융 유상증자를 시작으로 한국포스증권 인수를 단행해 우리투자증권의 재출범을 이끌었고,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로 11년 만에 보험업 복귀를 이뤄냈습니다. 이번 보험·증권 편입 효과는 올해 3분기 비이자이익 1조4415억원(전년 대비 4.6% 증가)으로 바로 드러났습니다.
사진제공=우리금융그룹
여전히 순이익 비중에서 우리은행이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은행 원바디'라 불릴 정도의 은행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경기·금리 변동을 함께 흡수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그룹 체질 개선의 의미는 큽니다.
자본비율 역시 상승 흐름을 그렸습니다. 2025년 3분기 그룹 보통주자본비율은 12.92%(추정치)로 연초 대비 80bp 정도 높아졌습니다. 단순한 계열사 확장에 머무르지 않고, 당국 규제와 시장 요구 사이에서 균형 잡힌 자본 정책을 병행했다는 평가가 금융권에서 나오는 배경입니다.
ESG 성과 역시 눈에 띕니다. 우리금융은 글로벌 평가기관 MSCI에서 3년 연속 'AAA'를 유지하며 데이터 보호, 환경 리스크 관리, 지배구조 등 주요 지표에서 선도그룹 평가를 받았습니다. ESG가 단순 홍보 문구가 아니라 리스크 통제력의 지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우리금융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일정한 신뢰를 더한 결과로 읽힙니다.
이 같은 재무·비재무 성과 위에 임 회장은 '미래동반 성장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포용·생산적 금융 기조를 얹었습니다. 2030년까지 총 80조원을 금융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며, 이윤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겨냥하는 지주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숫자, 구조, 철학이 함께 움직인 2년 반이라는 평가가 가능한 이유입니다.
물론, 성과가 늘어난 만큼 고민도 쌓여 있습니다. 관료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 지배구조를 둘러싼 질문, 그리고 내부에서 반복돼온 사고의 흔적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최소한 1기 임기만 놓고 보면, 임종룡 회장이 '숫자로 증명한 회장'이라는 평가는 이미 우리금융 역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진제공=우리금융그룹
이제 남은 질문은 다음 단계의 무게입니다. 성장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림자 역시 선명해지는 법입니다. 임 회장 체제의 '또 다른 얼굴', 우리금융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의 현실 역시 숫자로 드러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