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고령 배우'로 활동해 온 이순재가 25일 새벽 별세했습니다. 향년 91세입니다.
유족에 따르면 이순재는 그동안 고령임에도 꾸준히 건강을 관리하며 드라마, 영화, 연극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 왔습니다. 최근까지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2 드라마 '개소리'에 출연하며 무대와 브라운관을 지켰습니다.
건강 악화 속에서도 '현역 의지'를 드러냈던 이순재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별세를 슬퍼하고 있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수상 소감은 그래서 더 뜨겁게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2024 KBS 연기대상'
지난 10월 건강 문제로 잠시 활동을 멈추기 전까지도 그는 무대와 드라마에 서 있었습니다. 지난해에는 KBS 연기대상에서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는 당시 "오래 살다 보니까 이런 날도 있네"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연기를 연기로 평가해야지, 인기나 다른 조건으로 평가하면 안된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나이를 넘어선 연기자의 자존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었습니다.
후학에 대한 애정도 깊었습니다. 그는 가천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13년 동안 학생 한 명 한 명을 직접 지도해 왔습니다. 당시 촬영 일정 때문에 제자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황을 언급하며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학생들이 "염려 마십시오"라고 답하자 "눈물이 났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수상 소감의 마지막을 "시청자 여러분,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했습니다. 그의 인생 마지막 인사는 '감사합니다'였습니다.
한국 연기사의 한 축을 이뤄온 배우 이순재. '영원한 현역'이 남긴 마지막 발걸음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YouTube 'KBS Drama'
한편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이순재는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 본격적으로 연기의 길을 택했습니다.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영화 '햄릿'을 보고 배우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그는,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활동하며 TV·영화·연극을 오가며 전방위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순재가 남긴 대표작의 목록은 곧 한국 드라마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등 그가 출연한 드라마만 140편에 달합니다. 단역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30편의 작품을 촬영하던 시기도 있을 만큼, 그는 평생을 '현역'으로 살아온 배우였습니다.
70대 이후에는 스스로 이미지를 깨며 새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였습니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코믹 연기로 큰 사랑을 받으며 '야동 순재'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강인한 체력과 추진력으로 '직진 순재'라는 별칭을 얻으며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보여줬습니다.
최근까지도 연극 무대에서 활발했습니다. '세일즈맨의 죽음', '늙은 부부 이야기',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등 굵직한 작품을 포함해, 대학로에서는 '방탄노년단'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