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방한해 한미, 미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6년 만의 방한에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화제입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대통령의 전용 리무진인 '더 비스트'도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차량은 자국에서 공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29일 APEC CEO 서밋 행사장으로 향하는 '더 비스트' / 뉴스1
미국과 함께 G2를 이루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또한 '중국판 롤스로이스'라고 불리는 훙치를 국내로 공수해 이동했습니다.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이 어떤 차에서 내리느냐는 더 이상 의전 장면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안보와 외교, 그리고 국가 브랜드의 최전선이 됐습니다.
정상 의전차는 '우리가 어떤 차를 타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나라가 되었는가?'를 선언하는 장면입니다.
자국에서 만든 의전 차량을 통해 자동차 산업의 위상과 기술 프라이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주요 국가들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미국: '더 비스트'
공식적으로 '캐딜락 프레지덴셜 스테이트 카' 또는 '캐딜락 원'(Cadillac One)으로 불리지만, 대중에게는 '더 비스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괴물'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방호 기술로 무장한 '움직이는 요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더 비스트' / GettyimagesKorea
이 차량은 두꺼운 복합장갑 구조, 방탄유리, 런플랫 타이어, 자체 산소 공급 장치, 생화학 공격 대응 장비까지 포함해 '대통령 생존성'을 최우선으로 설계됐습니다.
제너럴모터스(GM)의 고급 브랜드인 캐딜락에서 제작합니다. 미국 비밀경호국이 운용과 관리를 담당하며, 임기가 끝난 차량은 기밀 유출 방지를 위해 철저히 파기됩니다.
미국은 이 차량을 해외 순방지에도 항공 수송해 그대로 사용합니다.
'더 비스트'는 단순한 차량을 넘어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력과 기술력, 대통령의 권위와 안전을 상징하는 '움직이는 백악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아우루스 세나트
푸틴 대통령 차량으로 쓰이는 '아우루스 세나트(Aurus Senat)'는 2018년 이후 크렘린이 대외적으로 반복 노출시키는 상징물입니다.
러시아 아우루스 세나트 리무진 / 러시아 크렘린궁
이전까지 러시아 정상 의전 현장에 자주 등장하던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기반 방탄 리무진 대신, 러시아 독자 브랜드를 전면에 세운 것입니다.
세나트는 약 4.4ℓ 트윈터보 V8 하이브리드 엔진과 중량급 장갑 사양을 갖춘 초대형 리무진입니다.
핵심은 '탈독일'입니다. 서방 제재 국면에서 "최고위 인사는 반드시 국산 세단을 타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 자체가 외교 퍼포먼스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소련 시대의 최고급 리무진인 'ZIL'을 계승해, 러시아의 산업 및 기술 잠재력의 부활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중국: 훙치
중국 국가주석 차량은 일관되게 '훙치(Hongqi, 붉은 깃발)' 브랜드입니다.
훙치 N701 / 뉴스1
훙치는 1950~60년대부터 최고 지도부 전용 브랜드로 육성돼 왔고, 현재 시진핑 주석의 의전 차량군은 훙치 L5, 훙치 N701 등 초대형 세단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대륙의 롤스로이스'로 불릴 만큼, 최고급 소재와 중국 전통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L5 모델은 내부에 가죽 시트, 목재 트림, 옥 장식 등이 적용되었습니다.
이번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에서 의전 차량으로 사용한 훙치 N701은 2022년 등장한 최신 의전차로, L5보다 더욱 현대적인 디자인을 갖추고 있으며, 한정 생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훙치는 단순한 자동차를 넘어 중국의 산업 기술력과 국가적 자존심을 상징합니다. 일반 소비자에게도 판매되지만, 여전히 고위층이나 명망 있는 인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차량으로 인식됩니다.
영국: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
영국 군주 전용 차량은 벤틀리가 버킹엄궁을 위해 주문 제작한 초장축 리무진입니다.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 / GettyimagesKorea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50주년(2002년)을 기념하여 벤틀리가 특별 제작하여 헌정한 차량입니다. 단 2대만 제작되어 국왕 전용으로 사용됩니다.
방탄 유리, 두꺼운 장갑 차체, 케블라 재질 타이어 등 최고 수준의 방호력을 갖추고 있으며, 생화학 무기 방어 기능도 적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석 도어가 거의 90도로 열리는 코치 도어(Coach Door) 방식을 채택하여 국왕의 승하차 및 대중에게 모습을 보이는 것을 용이하게 설계했습니다.
왕실에 차량을 헌정하고 국왕의 공식 의전차로 사용되는 것은 벤틀리가 영국의 국가를 대표하는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임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S 680 가드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가 의전용으로 쓰는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의 방탄 플래그십, S 680 가드(Guard)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 S 680 가드 4Matic / 메르세데스-벤츠 홈페이지
이 차는 메르세데스의 최상위 S클래스 기반 방탄 사양으로, V12 엔진(약 6.0ℓ)과 상시사륜, 특수 차체 구조를 갖추며, 민간 판매 가능한 차량 중 최고 수준인 VR10 급 방호 등급을 충족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때문에 독일 이외에도 많은 국가의 원수 및 재계 리더들이 이 차량을 의전 차량으로 선택하기도 합니다.
역대 독일 총리들은 전통적으로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BMW 등 자국 프리미엄 브랜드의 최고급 방탄 차량을 이용해 왔습니다. 이전 총리였던 앙겔라 메르켈은 주로 아우디 A8 리무진 방탄차를 이용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BMW와 같은 세계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를 보유한 자동차 강국인 독일은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 대표되는 기술적 우수성과 국가 최고 지도자의 안전 및 위엄을 동시에 알리고 있습니다.
일본: 토요타 센추리 로열
일본 천황은 '토요타 센추리 로열(Toyota Century Royal)'이라 불리는 극소수량 전용 차를 타며, 일본 총리 또한 토요타 센추리 계열(하이브리드 사양 포함)을 공식 의전 라인업으로 씁니다.
토요타 센추리 로열 / GettyimagesKorea
2006년에 도입되어 닛산 프린스 로열을 대체했으며, 일본 내에서 '폐하의 차' 또는 '어료차(御料車)'로 불립니다. 차량에는 토요타 엠블럼 대신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 어문장(菊花御紋章)'이 부착됩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기술적 우수성을 강조한다면, 센추리 로열은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로 대표되는 일본 특유의 극진한 환대 문화와 장인정신을 상징합니다.
해외 정상 방문 시에도 제공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 황실의 전유물이라는 점에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일본의 황실 문화를 반영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센추리 로열은 황실의 의례에 맞춰 제작되어,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사양들이 많습니다.
한국은?
역대 한국 대통령은 주로 메르세데스-벤츠 세단 끝판왕으로 불리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와 현대차 에쿠스를 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21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마친 후 대통령실로 향하며 차량 안에서 시민들에게 손 인사를 하고 있다 / 뉴스1
이재명 대통령 지난 6월 4일 인천 계양구 사저에서 주민 환송 행사를 가진 뒤 당선 후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으로 참배하러 갈 때 마이바흐 S클래스를 탑승했습니다.
마이바흐 S클래스는 벤츠 S클래스 최상위 모델입니다. 벤츠 S클래스보다 더욱 넓어진 실내, 최상위급 편의 사양과 인테리어 사양 등을 갖췄습니다.
방탄 성능은 비밀입니다. 다만, 공개된 정보에선 산소공급 시스템, 불꽃 진압장치, 강화 방탄 구조 등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전용차로 사용되는 국산차에는 에쿠스 외에 제네시스 EQ900도 있습니다. 방탄·방호 기능을 넣어 대당 가격은 일반 모델 대비 4배 가량 비싼 6억원 수준이었습니다.
이 차는 경호하기 좋은 청와대와 용산 경내 행사에서 주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외부 행사에서는 방탄·방호 성능이 더 뛰어난 마이바흐 S클래스가 메인 전용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EQ900이 단종되고 G90에게 '국가대표' 세단 자리를 넘겨준 지 7년이 지났지만 방탄·방호 성능을 갖춘 G90 대통령 전용차 개발 소식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