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일본 패전 후 사할린 조선인 학살 사건 새롭게 밝혀져
일본이 1945년 8월 패전한 이후에도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학살 사건이 추가로 발생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사할린주 향토박물관 관계자가 2019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입수한 수사 기록을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부터 9월 초까지 사할린 남부 각지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이 추가로 확인되었습니다.
진관사 태극기 / 뉴스1
사할린 조선인 학살 사건은 일본군과 경찰, 민간인 자경단 등이 소련군과의 전투와 혼란 속에서 조선인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면서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들은 탄광과 벌목장 노동자, 의용대 소속 조선인 등 다양한 계층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확한 피해자 수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일본 시민단체와 연구자들은 최소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기밀 해제 자료로 드러난 잔혹한 학살 실상
러시아 정부가 기밀 해제한 자료에 따르면, 이 학살 사건은 소련군과 일본군의 전투가 종료된 1945년 8월 25일 이후부터 9월 초순 사이에 발생했습니다.
당시 사할린 북서부에서는 소련군의 공습을 받던 일본군이 한 조선인 남성이 신호를 보냈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씌워 처형했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영화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군 병사 8명이 동시에 총을 쏘아 살해했으며, 이후 그 시신은 일본인 27명의 총검 훈련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희생된 조선인 남성의 시신에서는 수많은 상처 자국이 발견되었습니다.
사할린 북동부에서도 의용대에 소속된 조선인 남성이 일본군과 동등한 무장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총살당했습니다.
그해 9월 초순에는 다른 조선인 남성이 소련군에게 무기 은닉 장소를 폭로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아 총살당한 사례도 확인되었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영화 '군함도'
사할린 주립 향토박물관의 진 율리야 박사는 "전후 80년 가까이 지나서야 밝혀진 사건도 있다"며 "조선인은 일본인과 함께 살아가는 동료였는데, 전쟁 상황 때문에 시민이 시민을 죽이는 사건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노우에 고이치 홋카이도대 명예교수는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련군이 남하하면서 지상전이 임박하자 일본의 군국주의가 조선인들에게 공격의 창끝을 향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그는 "당시 수사 자료는 소련 시각에서 작성한 것으로, 일본이나 조선 측의 시점은 결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