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15℃ 서울
  • 15 15℃ 인천
  • 13 13℃ 춘천
  • 10 10℃ 강릉
  • 15 15℃ 수원
  • 17 17℃ 청주
  • 17 17℃ 대전
  • 13 13℃ 전주
  • 17 17℃ 광주
  • 16 16℃ 대구
  • 15 15℃ 부산
  • 16 16℃ 제주

가난한 환자 무료로 돌봐 '바보'라고 불렸던 의사는 '크리스마스'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 1995년 12월 25일 세상을 떠난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헌신으로 바보 의사로 불렸다.

인사이트YouTube 'CTS기독교TV'


바보 의사, 가장 어울리지 않은 두 단어로 가장 잘 표현되는 사람. 바로 성산 장기려 박사다. '한국 외과학의 아버지',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인물이다.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들고 갈 게 없어서 책을 챙기는 도둑에게 박사는 "그건 돈이 안 되는 것"이라며 대신 돈을 쥐여 보냈다. 


입원비가 없는 환자에게는 도망가라며 밤중 몰래 병원 뒷문을 열어줬다. 못 먹어 병이 난 환자의 처방전에는 '닭 두 마리 값을 내주시오'라고 썼다. 


박사가 남긴 일화들이다. 그는 평생 집 한 칸 없이 병원 옥탑방에서 살며 소외된 이들을 돌보던 바보 의사였다. 


인사이트YouTube 'CTS기독교TV'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장기려 박사는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인 중에서는 10명도 안 되던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수제 중의 수제다. 


지금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나고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등 당대가 인정한 최고의 의사였다. 


그 명성에 걸맞게 그의 앞에는 성공이 보장된 탄탄대로가 있었다.

 

스승인 백인제 박사는 경성의전 교수 자리와 대전 도립병원장 자리를 권유했다. 당대 의사라면 탐내지 않을 사람이 없었던 자리였다.


인사이트YouTube 'CTS기독교TV'


그러나 박사는 스승의 권유를 모두 물리쳤다. 부와 명예를 포기한 그는 가난한 나라에서 아파도 의사 한 번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삶을 택했다. 


최고의 수재이자 바보 의사였던 그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보다 많은 의료 혜택을 받기 바랐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1968년 그가 창설한 '청십자 의료보험'의 보험료는 월 60원이었다. 당시 담뱃값이 100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무척 저렴한 비용이었다. 


그가 만든 의료보험은 가난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도움이 됐고, 오늘날 국민건강보험의 토대가 되어 전 국민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인사이트YouTube 'CTS기독교TV'


1995년 겨울, 박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보다 일찍 사람들을 찾았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박사는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못 올 것 같아서 일찍 왔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25일 박사는 향년 84세로 소천했다. 그의 수중에 남아있던 전 재산은 고작 1천만원에 불과했다. 이 돈은 자신을 돌봐준 간호인에게 남겼다. 


박사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죽었을 때 물레밖에 안 남겼다는 간디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그의 아름다웠던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