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5일(월)

극단 선택한 대전 교사, 생전 교권침해 기록 직접 제보하며 서이초 사건 언급했다

인사이트뉴스1


[인사이트] 강유정 기자 = "언제까지 이렇게 당해야 할지 몰라서 메일 드렸습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교권 침해를 당한 기록이 공개됐다.


9일 공개된 해당 기록에 따르면 고인은 교사로서의 무기력함을 느끼고 교사에 대한 자긍심을 잃고 우울증약을 복용하게 됐으며, 당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이트대전교사노조


고인이 된 교사 A씨는 지난 7월 실시한 초등교사노조의 교권 침해 사례 모집에 자신의 사례를 직접 작성해 제보했다.


A씨의 제보 글에는 그가 2019년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당시 반 학생 중 4명의 학생이 교사의 지시에 불응하고, 같은 반 학생을 지속해서 괴롭힌 정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특히 교사 A씨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B 학생의 경우, 학기가 시작된 3월부터 교실에서 잡기 놀이를 하거나 다른 친구의 목을 팔로 조르는 행동을 했고 이에 A씨가 생활 지도를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B 학생이 수업 중 갑자기 소리를 치자 A씨는 이유를 물었고 B 학생은 대답을 안 하고 버티거나 친구를 발로 차거나 꼬집는 등의 행동을 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4월에는 B 학생 학부모와 상담했지만, 부모는 "학급 아이들과 정한 규칙이 과한 것일 뿐 누구를 괴롭히려는 의도는 없었다"라면서 "선생님이 1학년을 맡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조용히 혼내든지 문자로 알려달라"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모 상담 이후에도 B 학생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후로도 B 학생은 친구를 꼬집거나 배를 때리는 등 괴롭히는 행동을 반복했다.


어느 날에는 이 학생이 급식을 먹지 않겠다며 급식실에 드러누워 버티자, A씨는 학생을 일으켜 세웠는데, 10일 후 B 학생의 엄마는 '아이 몸에 손을 댔고 전교생 앞에서 아이를 지도해 불쾌하다'라고 항의 전화를 해왔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B 학생은 수업 시간에 지우개나 종이를 씹는 행동, 친구를 꼬집는 행동, 수업 중 계속 색종이를 접는 행동, A씨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버티는 행동 등을 이어갔다.


급기야 2학기부터는 친구 배를 발로 차거나 뺨을 때리는 행동이 지속됐고 이에 A씨는 교장 선생님에게 B 학생의 지도를 부탁했다.


다음날 B 학생의 학부모가 교무실로 찾아와 사과를 요구했지만, 당시 교장과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도 적혀 있었다.


A씨는 학부모에게 학생에게 잘못된 행동을 지도하려 했을 뿐 마음의 상처를 주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으나, 해당 학부모는 12월 2일 국민신문고와 경찰서에 아동학대로 신고를 넣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교육청 장학사의 조사 결과 혐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학폭위에서 학내의 전문가에 의한 심리상담 및 조언 처분을 받으라는 1호 처분이 내려졌다.


A씨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에도 10개월간 A씨는 혼자 길고 어려운 싸움을 해야 했다.


아동학대 조사 기관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 결과 '정서학대'로 판단해 사건이 경찰서로 넘어가고,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 조사를 받은 뒤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아동학대 조사 기관은 교육 현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며 조사 기관이 문제점도 지적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A씨는 생전 교권 상담 신청도 했다. 신청 내용에는 '언제까지 이렇게 당해야 할지 몰라서 메일 드렸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제출한 글에서 A씨는 "3년이란 시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다시금 서이초 선생님의 사건을 보고 공포가 떠올라 계속 울기만 했다"라고 밝혔다.


또한 "저는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어떠한 노력도 내게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토로했다.


당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A씨는 '회사 일을 하는데, 왜 회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냐'라는 남편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인사이트뉴스1


말미에 그는 "서이초 사건 등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어 교사들에게 희망적인 교단을 다시 안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A씨는 글을 쓴 지 약 한 달 반 뒤인 지난 7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A씨의 유가족은 고인의 평소 신념을 지키고자 사망선고 이후 A씨의 신체 조직(피부) 기증을 결정했다.


기증된 A씨의 신체 조직은 향후 긴급 피부 이식 수술이 필요한 화상 환자 등 100여 명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