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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윤봉길'은 도시락 폭탄을 던지지 않았다...잘못 알려진 폭탄의 정체

조국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가득했던 그는 붙잡히고 난 다음에 있을 일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김한솔 기자
입력 2023.04.30 17:57

인사이트의거를 행하기 전의 모습 /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91년 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폭탄 투척 의거를 벌인 날이다.


1908년생으로 당시 만 24살이었던 윤 의사는 천장절(일왕의 생일)과 일본군 상하이 점령 기념행사가 함께 열리고 있는 공원으로 걸어들어 갔다.


유창한 일본어를 사용해 일본인으로 위장한 윤 의사는 삼엄한 감시를 피해 마침내 행사 무대와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일본군 핵심 지휘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왕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자 윤 의사는 '수통형 폭탄'을 턴졌다. 일본군 수뇌부를 폭살해 조선 침략의 원흉을 제거하고 조국 독립에 대한 의지를 세상 천하에 천명하기 위한 의거였다.


인사이트의거 후 일본군에 붙잡혀 끌려가는 매헌 윤봉길 의사 / 민족대백과사전


폭탄이 터지면서 일본군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과 거류민단장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제3함대 사령관과 제9사단장 등 일본군 핵심 지휘관들이 치명타를 입었다.


이후 윤 의사는 또 하나 가지고 있었던 '도시락 폭탄'으로 자결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폭탄은 터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일본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일본군이 온몸을 붙잡자 그는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가득했던 그는 붙잡히고 난 다음에 있을 일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체포된 윤 의사는 같은 해 5월 28일 상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인사이트국가보훈처


윤 의사의 의거는 오랜 기간 동안 '도시락 폭탄'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자결용이었으나 터지지 않은 도시락 폭탄이 이후 공개되면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윤 의사에 대한 취조 내용 등을 바탕으로 1932년 7월 일본 내무성이 작성한 '상하이 윤봉길 폭탄사건 전말' 자료에 따르면 폭탄이 '성인 남성의 손바닥만한 크기로, 타원형에 가죽끈이 달려있어 어깨에 멜 수 있었다. 하얀 헝겊으로 폭탄의 전체 표면을 덮어 물통과 구분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병마개를 손으로 돌려 열고 안에 있는 끈을 잡아당겨 던지면 바로 폭발한다'고 표현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