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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韓 배상책임, 첫 인정...법원 판결 나왔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가족을 잃은 베트남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1심에서 사실상 승소했다.

인사이트뉴스1


[뉴스1] 김근욱 기자 =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가족을 잃은 베트남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1심에서 사실상 승소했다. 법원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따른 한국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7일 응우옌티탄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부가 원고에게 약 3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한국 군인들이 작전 수행 중에 응우옌티탄의 집으로 가 수류탄과 총으로 위협하면서 가족들을 밖으로 나오게 했고 차례대로 총격을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번 판결을 계기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피해를 본 베트남 민간인들이 줄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 응우옌티탄 "한국군이 학살" vs 정부 "인정 못해"


응우옌티탄씨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따르면 베트남전 당시인 1968년 2월 한국군 청룡부대 제1대대 제1중대 소속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에 들어가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 74명을 학살했다.


이른바 '퐁니 사건' 당시 8세였던 응우옌티탄씨는 복부에 총격을 입는 부상을 당했고 가족들 역시 죽거나 다쳤다. 응우옌티탄씨는 지난 2015년부터 한국에서 이 같은 피해사실을 알리고 2020년 4월 한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응우옌티탄씨 측은 응우옌티탄씨와 그의 오빠, 당시 퐁니마을 주민, 미군의 감찰보고서, 남베트남 군인들이 작성한 보고서, 당시 참전했던 우리나라 군인들의 진술로 민간인 학살이 충분히 입증된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 대리인은 피해자나 목격자들의 진술만으로는 가해자가 한국 군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또 1965년 한국과 월남 사이에 체결된 한·월 군사실무 약정에 따라 베트남인들이 한국 군인들에 의해 입은 피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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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민간인 한 곳으로 모아 총격"


재판부는 '한·월 군사실무 약정'에 따라 소송 자체가 부적법하다는 정부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군사 당국 사이에 체결된 약정은 기관 사이의 합의에 불과하다"면서 "베트남 국민 개인인 응우옌티탄씨가 대한민국 정부에 소송을 낼 수 있는 권리는 있다"고 짚었다.


불법행위 시점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정부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의 경우 채권자에게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유가 있었기에 소멸시효를 적용하면 안 된다는 응우옌티탄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를 종합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한국 군인이 베트남 민간인을 강제로 모이게 한 다음 총으로 사살했다"며 "이 사건으로 응우옌티탄의 이모, 언니, 남동생 등은 현장에서 사망하고 오빠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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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티탄 측 "대한민국의 1호 사과문…마을에 알리겠다"


응우옌티탄씨는 선고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 영상통화로 참여해 "이 사건으로 희생된 74명의 영혼들에게 오늘 소식이 기쁜 위로가 될 것"이라며 "퐁니퐁넛 마을 주민분들께 기쁜 소식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소송대리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20년이 넘었음에도 한국 정부는 인정도 사과도 없었다"면서 "오늘 대한민국의 공식 기구가 최초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한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 판결은 대한민국 사법기관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보내는 '1호 사과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이번 판결을 계기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피해를 본 베트남 민간인들이 줄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임 변호사는 "응우옌티탄씨 이외에도 피해를 호소하는 다수의 베트남 분들이 계신다"면서도 "다만 이들이 실제 소송에 나설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