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인사이트] 강유정 기자 = "방금 전에 보고 온 남자친구도, 먹었던 음식도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요"
보통 선천적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상상 속에서 무언가를 보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 여성은 두 눈의 시력이 멀쩡하지만 조금 전에 본 남자친구도, 방금 열고 들어온 문도 기억해 내지 못한다.
바로 '아판타시아'라는 희귀병 때문이다.
아판타시아를 앓고 있는 장-피에르 무니 / NewScientist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난 2017년 화제가 됐던 한 남성의 사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장-피에르 무니(Jean-Pierre Mooney)로 그는 '아판타시아'라고 불리는 시각실인증을 앓고 있다.
무니는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지만 그녀의 눈 색깔, 머리 스타일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여자친구뿐만이 아니다. 가만히 무언가를 떠올리려 해도 전혀 떠올리지 못한다.
말을 상상했을 때 1에 가까울수록 아판타시아에 가깝다 / Twitter '_aphantasia'
전 세계 2.5%만이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판타시아'는 이렇게 시각적으로 사물을 인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이미지를 머릿속으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인지장애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보는 파란색 버스도 집에 와서 생각해보면 버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색인지 전혀 상상하지 못한다.
과거 영국의 한 교수가 아판타시아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에 있는 창문의 수를 물었다.
그러자 이들은 창문의 개수는 정확히 말할 수 있었지만 '모양'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위와 마찬가지로 5에 가까울수록 아판타시아에 가깝다 / BBC
하지만 이들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어 본인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뒤늦게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아판타시아 테스트를 통해 이를 발견하곤 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알라딘,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 디즈니의 유명 캐릭터들을 그려낸 애니메이터 글렌 킨(Glen Keane)과 픽사 회장 에드윈 캣멀(Edwin Catmull)이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캣멀은 BBC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아판타시아라는 사실을 발견한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티벳 명상을 하는 동안 시각을 구체화하려고 시도하던 중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자신이 아판타시아임을 알게됐다고.
현재 아판타시아는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 뇌 속에서 상상하는 일을 관장하는 전두엽과 시각피질 사이의 신호 장애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