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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만 약자고 바보다" 남편 살해 당한 여성의 절규

범죄 피해 이후 심리적인 것 뿐 아니라 경제적인 부분에서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범죄 피해자 가정의 안타까운 실상이 공개됐다.

 

"뉴스에나 나오는 끔찍한 사건이 내 일이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나라에선 저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냥 우리가 알아서 살아야 하는 거죠. 

 

힘겹게 말문을 연 연모(50·여)씨는 6년 전 자신의 가정에 일어난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악몽 속에서 헤매는 것만 같다.

 

2009년 10월 10일 연씨의 남편은 집 근처에서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A씨가 개에 목줄을 매지 않은 것을 지적한 B씨와 말다툼하는 것을 지켜보다 화를 당했다.

 

격분한 A씨가 집에서 흉기를 갖고 나왔지만 B씨가 이미 자리를 떠버리자 엉뚱하게 불똥이 연씨 남편에게 튄 것이다.

 

A씨는 연씨의 남편에게 B씨의 행방을 물었다가 그에게서 "개 목줄을 매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흉기를 마구 휘둘러 살해했다.

 

한순간의 화풀이성 범죄로 연씨는 남편을, 두 자녀는 아버지를 잃었다. 시부모까지 모시고 살았던 연씨 가정은 이렇게 풍비박산이 났다.

 

연씨는 "느닷없이 남편이 끔찍한 일을 당했지만 가족 부양을 해야 하니까 울며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며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지금까지도 경제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라 국가에서 3천여만원을 받았는데 국민연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700만원을 도로 가져가더라"며 "지원금은 현실적으로 자녀를 부양하면서 재기하기에는 불가능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연씨는 서울 동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가끔 쌀이나 가재도구 같은 물품을 지원받는다. 사건 발생 3년 후 연씨의 아들이 사건 당시 받은 트라우마로 입원 치료를 받을 때 센터를 통해 병원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그러나 연씨는 "물품을 준다고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자녀 교육비나 생활비 일부를 정기적으로 매월 지원하는 식으로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막막한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암담하다"는 연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피해자만 약자이고 바보죠. 이런 일을 당했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그저 아무렇지 않았던 것처럼 숨죽이고 삽니다." 

 

2012년 8월 20일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진환 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박모(42)씨. 

 

서진환은 당시 유치원에 가는 자녀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온 박씨의 부인 C씨를 성폭행하려다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맞벌이 부부였던 박씨 역시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부인이 살해된 충격에 벗어나기도 전에 두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난관에 부닥쳤다.

 

박씨는 "국가로부터의 지원은 아내가 죽고 난 직후 받은 4천만원이 전부였고 그 뒤엔 어떤 연락도 받은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부인이 무참히 살해된 집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었던 박씨는 새롭게 살 곳을 수소문했지만 범죄피해자보호법이 보장한 주거지원책은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박씨는 "7천만원 한도 내에서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직장이 있는 서울에서 전세를 얻기가 어려웠다"며 "임대아파트 우선권을 지원해준다는데 경기도 외곽지역에 있는데다 언제 입주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 결국 어머니 아파트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지금 일곱, 여덟 살배기 자녀 둘을 대학까지 보낼 생각을 하니 막막해요. 적어도 아이들이 크는 동안에만 교육비나 양육비를 지원해주면 경제적으로 다시 서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저 막막함에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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