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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박상우 기자 = '휴전 국가'인 우리나라 군인들의 가장 큰 임무는 단연 경계 근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든 침입할 수 있는 적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유사시 조치까지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 군의 초소는 24시간 비워지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도 군인은 국민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초소를 지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까지도 경계 근무를 서는 군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사연이 있다. 한 일병의 빠른 판단으로 무장공비 3명을 해치운 이 사연은 4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군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80년 3월 23일 새벽 2시 50분께 황중해(당시 22) 일병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구산동 한강하구에서 후임 김범규 이병과 한강 철책 근무를 서고 있었다.
황 일병은 진눈깨비가 날릴 정도로 추운 날씨에도 철통같은 경계를 유지했다. 전날 오후 10시부터 근무에 투입한 탓에 다소 경계가 느슨해질 수 있었지만 황 일병은 달랐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DMZ, 비무장지대'
그는 근무 교대 10분 전 70여m 앞에서 어렴풋이 움직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확인 결과 움직인 물체는 사람이었다. 정찰국 공작원 3인이 은밀하게 접근한 것이었다.
황 일병은 이들의 정체가 '무장공비'임을 직감했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김 이병에게 30여m 떨어진 소초에 연락하라고 시킨 뒤, 무장공비와 전투를 벌였다.
당시 중대 내 특등사수였던 황 일병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는 침착하게 호흡을 멈추고 M16 소총을 조정간 단발로 놓고 조준 사격을 시작했다.
평소 불빛이 없는 어둠에 익숙하고 시력이 양안 2.0으로 알려진 그는 완벽한 사격을 선보였다. 선두로 진입하던 공작원은 흉곽을 관통하며 즉사했고, 두 번째 공작원 역시 목을 관통해 즉사했다.
마지막 공작원은 곧이어 투입된 소대 병력 20여명과 합심해 집중 사격을 해 사살시켰다. 그렇게 무장공비 3명은 모두 현장에서 사살됐다.
이 전투로 우리 군은 소총과 잠수복 등 장비 47종 465점을 노획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황 일병의 빠른 판단이 없었더라면, 부대는 물론이고 서울 인근 철책이 뚫렸을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우리 군은 황 일병과 김 이병의 대응을 높이 샀다. 황 일병은 화랑무공훈장보다도 1등급 높은 '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았고, 참모총장 표창, 국가유공자 표창 등을 받았다.
아울러 6개월 사단장 휴가, 6개월 연대장 휴가를 수여 받았으며 포상금 1,700만원(당시 강남 은마아파트 31평형 가격이 약 1,900만원)을 즉시 수령했다. 이 과정에서 황 일병은 연대장 휴가를 받아 헬기를 타고 고향에 가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이날 이후 황 일병은 부사관에 지원해 '장기복무'를 신청했다. 그렇게 황 이병은 9사단 같은 연대에서 경리담당관(당시 상사)으로 32년간 복무한 뒤 2012년 전역한 것으로 전해졌다.
9사단은 황 일병의 이름을 따 지난 2002년 5월 '구산리 소초'를 '황중해 소초'로 명명하는 등 그의 공로를 기렸다. 또한 매년 3월 23일 해당 소초에서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