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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전국 사창가를 다 가봤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하는 장기실종자 찾기 프로젝트 두 번째 사례는 1991년 유괴 당한 정유리 아동의 사연이다.

사진 제공 = 정유리 아동 가족

 

"유리를 잃고 3년 간은 미쳐있었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이 인사이트에 소개한 장기실종자 정유리 아동의 아버지의 가슴에는 1991년 8월 5일 유괴 당한 딸이 생생히 남아 있다.

 

정유리 아동의 아버지 정원식 씨는 "그날은 할머니와 시골에 살던 유리가 아빠 만나러 안산으로 처음 온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며 가슴을 쳤다.

 

충청남도의 한 시골 마을에 살던 정원식 씨는 일자리를 구해 1989년 안산으로 올라왔다. 

 

언제나 의젓하던 맏이 정유리 아동은 식구들이 안산으로 이사를 갈 당시 "고향에서 할머니와 살며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때 부모님이 계신 안산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러다 정유리 아동이 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해, 할머니는 여름방학을 맞아 손녀를 데리고 안산으로 올라왔고 두 동생을 데리고 시골로 돌아갔다. 

 

정원석 씨는 모처럼 안산으로 온 딸과 함께 근처에 사는 형제의 집에 놀러갔고, 두 형제가 술 한잔을 걸치는 사이 정유리 아동은 사촌 동생들과 집 앞에서 놀아주고 있었다.

 

그 때였다. 바깥에서 놀던 조카들이 집으로 돌아와 "어떤 아줌마 아저씨들이 유리 언니를 끌고 갔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정원석 씨는 맨발로 뛰어나갔지만 이미 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진 제공 = 정유리 아동 가족  

 

그 후로 아버지의 삶은 송두리째 사라졌다. 

 

당시 청량리, 미아리 등지의 사창가에서 어린 아이들도 성매매를 한다는 소문을 들은 아버지는 전국 사창가를 돌아다니며 "여기서 제일 어린 아이를 보여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 할 일이 못 되었다.

 

정원석 씨는 인터뷰에서 "3년 간은 미쳐있었다"며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다 유리를 들고간 유괴범으로 보여 사람들과 말을 제대로 섞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에 정원석 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하루도 빠짐없이 전단지를 돌리는 일이었다.

 

인터뷰를 한 날도 수원 쪽에서 전단지를 돌렸다는 그는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또 "전국에 유괴 사건, 아동 실종 사건이 한 두 건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전단지를 주면 보는 앞에서 바닥에 버리고 또 그냥 밟고갑니다. 저는 심장이 이렇게 찢어지는데 자기 애 아니라고 너무 무심해요. 그런 땐 나쁜 마음이지만 '당신도 딸을 잃어보라.우리같은 사람들 무시하지 마라'는 마음도 듭니다"고 말했다.

 

다행히 정유리 아동의 두 동생은 엄마가 생계를 전담하며 잘 키웠고 결혼해 애도 낳고 잘 산다고 한다.

 

손자들만 봐도 잃어버린 딸이 생각난다는 그는 인터뷰 말미에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해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해 안산 학생들 세월호 사건 터졌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파서 울었어요. 그래도 실종 사건은 끝까지 생사 확인도 못해 어떤 마음의 정리도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생사라도 알고 싶습니다."

 

실종된 정유리 아동은 79년생으로 현재 나이는 37세(만 35세)다. 

 

<아빠와 함게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정유리 아동>

 

사진 제공 = 정유리 아동 가족

 

정은혜 기자 eunhye@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