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전 오늘(5월 18일), 광주시민들은 군부의 '총칼'에 맞서 싸웠습니다

인사이트영화 '화려한휴가'


[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41년 전 오늘(5월 18일), 광주시민 5천명은 전두환을 위시한 군부에 무참히 희생당했습니다"


41년 전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를 향한 저항이 시작됐다.


광주시민들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전두환 신군부를 좌시하지 않았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기꺼이 저항했다.


전남대 학생들은 공수부대가 총칼로 위협하는 가운데서도 "민주주의!"를 외쳤다.


인사이트5·18 기념재단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군인들이, 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공격까지 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그때는 있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독기 가득했던 진압부대는 학생들을 마구 구타했다.


광주시민들은 공수부대의 광기에 경악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은 민주화 시위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전남대 학생들의 시위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 됐다.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전두환이 이끄는 계엄사령부는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했다. 시민들을 "북한에서 온 간첩들이다"라며 폭력진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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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의 진압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시위에 참여했는지 여부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오직 곤봉과 대검으로 눈에 보이는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이들와 광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계엄사령부 명령 하에 움직이던 공수부대는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발포했다. 아직까지도 이 발포를 지시한 이는 밝혀지지 않았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광주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외부 연결을 차단해 완전히 고립시켰다.


인사이트영화 '화려한휴가'


다른 지역의 시민들은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TV 뉴스와 신문 모두 완벽히 차단돼서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저 광주에서의 운동으로만 끝이 났다.


광주시민들의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지지 못했고, 결국 전두환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오는 24일 전두환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재판이 열린다.


전씨 측은 지난 10일 열린 첫 공판기일에 출석하지 않았고 연기된 날짜인 24일에도 법리상 불출석한 상태에서 재판이 가능하다며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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