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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전 오늘(13일), 일제 고문에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선생

76년 전 오늘은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마리아 선생이 순국한 날이다.

인사이트국가보훈처


[인사이트] 유진선 기자 = 2007년 5만 원권 지폐 발행을 앞두고 지폐에 들어갈 인물로 거명되면서 화제가 된 인물이 있다. 

 

바로 76년 전 오늘(13일)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한 김마리아 선생이다. 

 

김마리아 선생은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하고 석사 학위까지 받은 엘리트로 2.8 독립선언을 3.1 운동으로 연결한 주역이었다.

 

그는 충분히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평생을 고된 독립운동에 몸 바치고 53세에 생을 마감했다.  

 

인사이트국가보훈처


1892년 6월 18일, 황해도 장연군에서 태어난 김마리아 선생은 연동 여학교를 다니면서 민족정신을 품었다. 

 

일본 유학 중이던 1919년 동경에서 펼쳐진 2.8 독립선언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김마리아 선생은 독립운동에 여성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거족적인 독립운동으로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귀국해 활동하기로 결심했다. 

 

2.8 독립선언서 10여 장을 복사해 옷 속에 감추고 귀국한 선생은 여성계, 교육계, 기독교계 등의 지도자를 만나 전국적인 독립운동을 벌일 것을 촉구했다. 

 

인사이트국사편찬위원회


2.8 독립선언을 3.1 운동으로 연결한 선생은 이내 일제에 붙잡혔다. 그뒤 성인 한 명이 눕기도 힘든 크기의 독방에 갇혀 갖은 고문을 받았다. 

 

이미자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가해진 고문 중에 진정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대나무 작대기로 머리를 때리는데, 폭언하면서 피가 나지 않게 기술적으로 계속 때리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고문으로 선생은 코와 귀에 고름이 잡히는 메스토이 병에 걸려 평생을 심한 두통과 신경 쇠약증 등을 겪었다. 

 

석방된 후인 1919년 9월 애국부인회 회장으로 선출된 선생은 전국에 지부를 설치하며 조직을 확대하고, 6,000원의 군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로 보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그러다 애국부인회 전임 회장이었던 오현주가 변절해 일제에 밀고했고, 또다시 체포된 선생은 다시 한번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이 때 고춧가루를 탄 물고문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생은 '너희가 할 대로 다 해라, 그러나 내 속에 품은 내 민족 내 나라 사랑하는 이 생명만은 너희가 못 빼내리라'라고 되뇌며 고문을 견뎠다. 그러나 3.1 혁명 직후 당한 고문 후유증인 메스토이병 악화와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사경을 헤매게 된다. 

 

선생은 이 때문에 병보석을 받아 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곳에서 건강을 회복한 선생은 임시정부의 도움으로 병원을 극적으로 탈출한다.  

 

선생은 일본의 감시를 피해 미국에서 망명하던  도중 독립운동단체 '근화회'를 조직했다.  

 

1933년에 다시 귀국한 후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항일 투쟁을 이어가다가 고문 후유증 악화로 인해 1944년 3월, 광복을 불과 1년여 앞두고 순국했다. 

 

평생 독립과 여성인권을 위해 일했던 선생의 곁에는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올해 3월 기준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 1만 5천 931명 중 여성 독립운동가는 477명뿐이다.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더 부지런히 발굴해 업적을 후세에 남길 필요성을 일깨우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