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2일)은 수많은 시민 목숨 빼앗은 '독재자' 전두환이 탱크로 '반란' 일으킨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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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당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60~70년대 눈부신 성장을 이룬 박 전 대통령의 서거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독재 정치의 종말에 정치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 또한 늘었다.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대통령과 함께 차지철 경호실장이 살해됐고, 총을 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체포돼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상실된 세 사람의 권력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군부에서는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인사이트전두환 전 대통령 / 뉴스1


10·26 사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던 국군보안사령부 전두환 소장도 군대를 장악할 야욕을 드러냈다.


결국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은 자신이 이끌던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전두환은 이를 통해 라이벌이었던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등을 강제 연행하며 군부 권력의 정점에 섰다. 


군대를 장악한 전두환의 다음 목표는 대통령. 선례는 있었다. 그렇게 전두환은 정치에 욕심을 드러냈다. 


이에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열망은 더욱 커졌다.


광주에서는 전남대 학생들이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의 쿠데타적 조치에 항거에 시위했고, 여기에 계엄군과 공수특전여단이 투입되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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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지난달 26일 박지원 의원이 공개한 보안사에서 직접 찍은 광주 사진 / 뉴스1


인사이트1980년 광주의 5월 / 뉴스1


계엄군의 폭력 진압과 총격, 여기에 스스로 무장한 시민군과의 전투까지 벌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전두환은 결국 1980년 8월 6일 육군 대장으로 진급한 뒤 22일 전역하고 27일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의해 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또 다른 군부 독재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당시 무력 진압에 소중한 가족을 잃었던 유족들은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작 전두환 전 대통령은 치매라는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하고 있다. 


인사이트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 노재헌 씨 / 뉴스1


반면 12·12 군사 반란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씨는 지난 5일 주 남구 오월어머니집을 찾아 5·18 피해자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날 오월의집을 찾은 노 씨는 "5·18 당시 광주시민과 유가족이 겪었을 아픔에 공감한다. 아버지께서 직접 광주의 비극에 대해 유감을 표현해야 하는데 병석에 계셔서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12·12 군사 반란 당시의 주동자 2인의 전혀 다른 행보. 오늘날 이 두 사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 또한 크게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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