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60년 전까지 일본에서는 '성폭행'이 즐거운 '밤문화'였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아가씨'


[인사이트] 전형주 기자 = 일본은 누구나(?) 자유롭게 성(性)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성진국(性進國)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달릴까.


대체 일본의 이런 문화는 언제, 왜 형성된 것일까. 일각에서는 그 원인으로 20세기까지 유행했던 일본의 한 풍습을 꼽고 있다.


일본에는 일면식도 없는 여성의 침실에 침입해 성교를 하고 나오는 요바이란 풍습이 있었다. 성폭행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요바이는 10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약 1000년간 크게 유행했다.


서일본의 서민층에서 주로 행해졌고, 종종 일부 무사 계급도 요바이를 즐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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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바이에는 명확한 규칙이 있었다. 먼저 거주하는 마을을 벗어나 요바이를 해서는 안 됐다. 이 규칙을 무시하고 옆 동네에서 요바이를 하다가 걸리면 태형을 당했다고 한다.


또 요바이를 당한 여성에게는 임신하면 남편을 지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신분이 높은 남편감을 고르면 덩달아 귀족이 될 수 있다 보니 여성도 굉장히 환영하는 추세였다.


요바이의 형태는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다. 대부분은 젊은 여자나 과부, 미천한 신분의 여성과만 요바이를 허용했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혼인 여부를 불문하고 전 여성을 상대로 요바이를 허용했다.


이외에도 극소수의 지역에서는 타지의 손님이 오면 마을의 여성을 내주거나, 자신의 아내까지 내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축제라도 있는 날에는 야외에서도 요바이를 즐기는 남녀가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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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바이는 결국 성 문화를 문란하고 외설적으로 바꿔놨다. 배우자가 있는 유부녀까지 요바이를 즐기면서부터 족보가 심각하게 꼬여버린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세기 들어 부랴부랴 이 요바이를 제지하기 시작했다. 결국 요바이는 정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20세기 중반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일각에서는 요바이가 전란으로 남성이 줄고, 과부가 늘어나면서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탄생한 문화였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전란이 잦았던 북유럽에서도 요바이와 비슷한 문화가 상당히 오랫동안 성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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