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 마지막 '광복군' 할아버지가 세상 떠나는 그 순간까지 바랐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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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김남하 기자 = "지금 현재도 친일파 후손들이 있어. 아직도 청산이 안 돼 있어"


모진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마지막 '광복군'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민족반역자 청산을 바랐다.


지난 2월 대한의 마지막 광복군이자 애국지사 김우전 선생이 향년 9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백범 김구의 비서이자 광복군이었던 그는 생존해있는 이 시대 마지막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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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전 선생은 젊은 날에는 대한의 독립을 위해, 광복 후에는 독립유공자의 처우를 위해 힘썼다.


김 선생은 지난해 EBS와의 인터뷰에서 "독립운동, 민족정기에 관한 그 도가니 속에서 나는 살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평안북도 정주 오산 출신인 김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독립운동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향에는 3.1운동 당시 33인 국민대표로 활동했던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가 있었다. 그의 형님 역시 독립운동을 했고 일본군에 잡혀가 고문당하고 돌아오는 모습을 숱하게 보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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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때 일본 학도병으로 강제징병 된 김 선생은 과감히 탈출을 감행한다. 그 길로 광복군에 합류해 전략첩보부대(OSS)에서 훈련을 받았고 김구 선생의 비서로 활약했다.


김 선생은 인터뷰에서 "독립운동한 사람이 전체 민족의 10%도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자신을 희생해 조선의 독립을 열망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길이었다.


1945년, 꿈에 그리던 조국의 독립이 찾아왔고 김 선생은 이제 독립운동가들이 잘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는 달랐다.


권력을 쥔 친일파는 일본이 물러간 후에도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떵떵거리며 살아갔다. 당연히 후손들도 좋은 학교를 나와 승승장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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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찢어지는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번번이 독립유공자 심사에 탈락하고 정부의 무관심 속에 보일러도 없는 추운 단칸방에서 그렇게 사라져갔다.


매정한 나라를 원망하거나 살아온 인생을 후회할 법도 했지만 김 선생은 오히려 자신을 '행운아'라고 표현했다.


누구도 쉽게 선택할 수 없고 고난이 불 보듯 뻔한 길을 택해 걸어온 김 선생은 그 길이 자신에게 주어져 행운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독립유공자를 외면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에 개탄하며 "억압당했던 36년은 어쩌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라 근래의 일일지도 모른다"고 씁쓸함을 전했다.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친일파 청산과 독립유공자의 처우개선을 바랐던 그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뜻깊은 교훈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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