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0일(토)

한국인 1만명 탄 배에 일부러 폭탄 터트려 '수장학살' 하려한 일본의 충격적인 만행

인사이트우키시마호 실제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인사이트] 김남하 기자 = 약 74년 전 여름, 대한민국 온 겨레는 광복의 기쁨으로 환호하고 있었다.


나라를 되찾은 행복도 잠시, 한반도와 일본 사이 해상에서는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고가 벌어졌다.


약 1만명 이상의 한국인 사망자를 내고 아직도 수많은 의혹을 남기고 있는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이다.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일본과의 무역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과거 1945년 벌어진 우키시마호 사건이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사이트KBS 'NEWS 9'


1945년 8월 일본 열도에는 1만 2,000명가량의 한국인 강제징용자들이 광복 소식을 듣고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후 일본 해군 측은 어쩔 수 없이 한국인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화물선 우키시마호를 준비했다.


한국인들은 다가올 참사도 예견하지 못하고 그저 고국에 돌아갈 생각에 벅찬 채 배에 승선했다.


안타까운 사고는 출항 이틀 차인 8월 24일에 일어났다. 교토부 부근 마이즈루만 해상에서 갑자기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것이다.


인사이트KBS 'NEWS 9'


1만 명 이상이 타고 있던 우키시마호는 그대로 수몰됐고 대부분의 한국인 역시 바다에 빠져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약 일주일 후 일본 해군은 이 사고를 '미국이 깔아놓은 기뢰에 부딪혀 폭발한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우키시마호의 항해 경로는 그 어떠한 기뢰도 없는 '소해 지역'이었다. 이미 미·일 양국에서 이 해역에 기뢰가 없음을 공식 인정한 후였다.


일본의 주장과 달리 생존자들은 이 사고를 일본 해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인들에게서 군사 기밀 자료들이 유출될까 걱정한 일본군이 사전에 치밀하게 침몰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마이웨이'


실제로 당시 우키시마호의 연료가 목적지인 부산까지 가기에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 사전에 일본인 승무원들만 따로 보트에 탑승해 탈출한 점 등이 이를 방증한다.


수많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증언, 역사학자들의 증거 제출, 심지어 일본 내 학자들까지 우키시마호 침몰을 '일본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정부는 그 어떠한 입장 표명, 진상 조사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나 사과 역시 전혀 없었다.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수천 명의 한국인에게 우키시마호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은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