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a 서울경찰 /Facebook
연기가 자욱한 화재 현장에서 90세 노모(老母)보다 반려견을 먼저 챙겨나온 딸과 손자의 사연이 알려져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23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빌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반포지구대 김재호 경장은 화재 건물 바로 맞은편 검은 연기로 뒤덮힌 다른 빌라 2층에서 한 남성의 "살려달라"는 외침을 들었다.
집안에 노령의 할머니를 포함 3명이 있다는 말을 듣고 김 경장은 어서 대피하라는 말을 전했다.
김 경장의 말을 듣고 곧 건물 밖으로 빠져나온 A(39) 씨는 반려견만 덩그러니 품에 안고 있었다. 김 경장이 다른 사람들의 행방을 묻자 황당하게도 아직 건물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김 경장은 A씨가 두르고 있던 물수건을 빌려 서둘러 구조에 나섰다. 건물 안에는 계단 난간을 힘겹게 붙잡고 옴짝달싹 못하는 90세 할머니가 서있었다.
할머니의 딸이자 A씨의 어머니인 B(62) 씨는 집문 앞에서 다른 반려견을 챙기던 중이었다.
김 경장은 B씨에게 "빨리 대피하시라"고 외친 뒤 할머니를 들쳐 업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할머니는 연기를 많이 들이마시긴 했지만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김 경장이 한숨 돌리려던 찰나 B씨는 다시 한 번 빌라 안에 들어가주길 요청했다. 남아있는 반려견 한 마리를 구조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김 경장은 "꼭 구해야 한다"는 B씨의 말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고, 마침내 집 안에 남아있던 3명의 사람과 3마리의 반려견은 모두 무사히 구출됐다.
이에 대해 김재호 경장은 인사이트와 인터뷰에서 "상황이 다급하다보니 경황도 없고, 많이 당황하셨던 것 같다"며 "개를 먼저 구한 것은 맞지만 그 분들도 옆 집 화재로 인한 피해자일 뿐"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오향주 기자 hjoh@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