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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삼성폰' 500억 불태우라고 지시한 뒤 '애니콜 신화'는 시작됐다

오늘날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가 전 세계 시장 1위를 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24년 전 일어난 전설의 '애니콜 화형식' 덕분이다.

인사이트1988년 삼성그룹 창립 50주년 당시 이건희 회장 모습 / 사진제공 = 삼성그룹


전 세계 스마트폰 1위 삼성 '갤럭시 신화' 일군 '애니콜 화형식'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24년 전인 지난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


삼성전자 직원 2000여명은 '품질확보'라고 적혀 있는 머리띠를 두른 채 비장한 모습으로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하나둘씩 모였다.


운동장 한 켠에는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그리고 운동장 한복판에는 15만대에 달하는 휴대폰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10여명의 직원은 휴대폰에 해머질을 해대기 시작했고 휴대폰은 박살이 나고 말았다. 직원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박살난 휴대폰에 불까지 붙였다.


인사이트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공장 운동장에서 열린 '애니콜 화형식' 모습 / 사진제공 = 삼성전자


불구덩이 속에 타들어가는 삼성 '애니콜' 보고 눈물 흘린 직원들


당시 물가로 환산했을 때 휴대폰의 가치는 모두 500억원. 그렇게 15만대의 삼성폰은 하루 아침에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


삼성전자 무선부문 이사를 맡았던 당시 이기태 전 사장은 자신의 눈물 땀이 깃든 휴대폰이 불구덩이 속에서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오늘날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가 전 세계 시장 1위를 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자 뿌리가 된 전설의 '애니콜 화형식'이다.


'애니콜 화형식'의 발단은 지난 1994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는 당시 야심차게 무선 휴대폰 'SH-770' 제품을 출시했다.


인사이트1994년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로 양산한 휴대폰 애니콜 'SH-770' / Android Authority


제품 불량률 11.8%에 달했던 삼성전자 '애니콜' 첫 모델의 한계


언제, 어디서나 전화 통화가 잘 터진다는 의미로 '애니콜(AnyCall)'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삼성전자 'SH-770'는 '애니콜' 브랜드를 단 첫번째 휴대폰이었다.


휴대폰이 생활화가 되지 않았던 시대다보니 삼성전자가 만든 휴대폰은 휴대폰이라기 보다는 무선전화에 훨씬 가까웠다.


삼성전자가 만든 '애니콜' 첫번째 휴대폰 'SH-770'는 출시 직후 수개월 만에 시장 점유율 30%를 장악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초기 모델이었던 탓에 제품 불량률이 11.8%에 달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지인들에게 휴대폰을 선물했었는데 여기저기서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인사이트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공장 운동장에서 열린 '애니콜 화형식' 모습 / 사진제공 = 삼성전자


'애니콜 화형식' 4개월 뒤 벌어진 놀라운 일…삼성폰 국내 1위


제품 불량품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건희 회장은 이듬해 1월 판매된 휴대폰을 새 제품으로 교환해 주라고 지시했다. 신문에 불량 제품을 교환해주겠다는 광고까지 실었다.


그렇게 해서 수거된 불량 휴대폰은 모두 15만대. 불량 휴대폰들은 구미사업장 운동장 한복판에 차곡차곡 쌓였고 이건희 회장은 공개 화형을 지시했고 삼성폰 15만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건희 회장의 불호령으로 단행된 '애니콜 화형식'은 삼성전자를 180도 확 바꿔 놓았다. 4개월이 지난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삼성전자 '애니콜'이 미국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시장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사이트애플 '아이폰'에 맞서 삼성전자가 내놓은 '옴니아(Omnia, SGH-i900)' / (좌) Engadget, (우) Telefonino


애플 '아이폰' 등장으로 삼성폰 위기…'갤럭시'로 맞선 삼성전자


'애니콜'이 1997년 5월 무선 분야 올림픽 공식 파트너로 선정되면서 '삼성' 브랜드를 전 세계에 알리는 발판이 됐고 2002년 일명 '이건희폰'이라고 불린 'SGH-T100'으로 텐밀리언(1000만대) 셀러 시대 문을 열었다.


물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7는 애플 '아이폰'이 혜성같이 등장하면서 휴대폰 시장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시장이 옮겨간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8년과 2009년 애플 '아이폰'에 맞서 야심차게 최초의 스마트폰 '옴니아' 시리즈를 잇따라 내놓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옴니아'가 채택한 운영체제(OS)가 윈도 모바일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는 말이 있듯 삼성전자는 2010년 구글과 협력해 '갤럭시S'를 선보였고 오늘날 '갤럭시S10' 시리즈까지 그 명성이 이어지면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최강자 자리에 올라서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