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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장 100대 맞는 대신 한 달 월급 받은 조선 시대 '극한 알바' 매품팔이

품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양반들을 대신해 곤장을 맞아준 뒤, 돈을 버는 직업 매품팔이가 조선 후기에 성행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백일의 낭군님'


[인사이트] 김민주 기자 = 판소리 '흥부가'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때 본읍 김좌수가 흥부를 불러 하는 말이 '돈 삼십 냥을 줄 것이니 내 대신 감영에 가서 매를 맞고 오라'"


"흥부 생각하되 '삼십 냥을 받아 열 냥어치 양식 사고 닷 냥어치 반찬 사고 닷 냥어치 나무 사고 열 냥이 남거든 매 맞고 와서 몸조섭 하리라'"


흥부가에 등장하는 매를 대신 맞는 일은 실제 조선 시대 후기에 존재한 특이한 직업 중 하나였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대박'


일명 '매품팔이'라 불린 이 직업은 양반 대신 곤장을 맞아준 뒤 돈을 버는 일을 말한다.


죄를 지었지만, 고고한 품위를 유지하고 싶었던 양반들이 가난한 백성을 이용한 것이다.


특히 조선 시대 후기에 성행했는데, 이는 당시 부패한 사회 모습과도 큰 연관이 있다.


유교 경전 '예기'에 따르면 조선 전기에는 보통 양반이 죄를 지어도 벌금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매를 대신 맞을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매관매직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신분을 사서 관직에 오르는 사람들이 늘었다.


주로 이들에게는 곤장형이 내려졌고, 매를 맞기 싫었던 양반들은 돈을 제시하며 대타를 구하기 시작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MBC '구가의서'


힘겹게 생활하던 백성들은 양반들의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매품팔이'라는 특이한 직업이 탄생했다.


당시 곤장은 20대만 맞아도 엉덩이에 피가 흥건히 고일 정도로 고통이 따르는 형벌이었다.


만약 100대를 맞으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이 뒤따랐다. 하지만 백성들은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매품팔이의 대가로 곤장 100대에 7냥 정도의 돈을 받았는데, 이는 날품팔이 일을 하는 백성의 일당 35배에 달하는 거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양반들은 형을 집행하는 관리와 아전들에게도 돈을 건네며 완벽히 입막음했다.


또한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양반들은 매품팔이에 대한 별다른 기록도 남겨두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지은 죄를 대신해 고통스러운 처벌을 받았던 매품팔이. 이는 조선 후기 부정부패한 사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우리의 아픈 모습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