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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 280명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가 만든 이른바 ‘베이비박스’에 갓 태어난 아기를 놓고 가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김동규 채새롬 기자 = "전국에서 아기들이 오는데 서울에는 더는 아기들이 갈 보육원 자리가 없어요."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가 만든 이른바 '베이비박스'에 갓 태어난 아기를 놓고 가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이를 해결해야 하는 관악구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2009년 12월에 생긴 이 베이비박스는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아이를 포기한 부모가 이곳에 아이를 맡기고 있다.

 

아기를 입양 보낼 때 출생신고를 의무화하고 법원이 이를 허가하도록 하는 등 입양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내용으로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2012년 8월 시행된 이후 영아 유기가 급증했다.

 

개정법은 친모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를 친부가 입양 보내지 못해 아예 포기하는 사례도 늘었다. 미혼모는 아이를 입양 보내면 각종 문서에 혼외자를 낳았다는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것을 두려워해 아이를 유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가족관계증명서에 미혼모의 자녀출산 기록 등이 나타나지 않게 하고 아버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까다로운 입양 제도와 미혼모에게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 복지체계 때문에 베이비박스에 갓난아기를 버리고 가는 부모의 발걸음이 쉽게 줄지 않을 것이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 영아유기·베이비박스 이용 급증…입양은 줄어

 

3일 경찰청에 따르면 영아유기 발생건수는 2009년 52건에서 2010년 69건, 2011년 127건, 2012년 139건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다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이후인 2013년에는 225건으로 급증했다.

 

부모들이 길거리나 여관방 등이 아닌 베이비박스를 유기 장소로 선택하는 경우도 많이 늘어났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는 경찰에 신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이곳과 경기 군포시 새가나안교회 등 2곳에 설치된 베이비박스를 통해 버려진 아기는 2011년 37명, 2012년 79명, 2013년 252명에 이어 지난해 280명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에는 1∼4월에만 94명의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다.

 

특히 지난해 설치된 군포 베이비박스에는 작년에만 27명의 아기가 맡겨졌다. 베이비박스가 생기기 전인 2012년과 2013년 군포시에서 발생한 영아유기 사건은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 관계자는 "현재 베이비박스는 서울과 군포 두 곳에만 있어서 지방에서 상경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유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영아 유기가 급증하면서 정식 입양은 크게 줄었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미혼모 자녀 입양자수는 2011년 1천452명이었던 것이 2012년 1천48명, 2013년 641명 등으로 급감했다.

 

◇ 미혼모에 '주홍글씨' 찍은 개정 입양특례법

 

2012년에서 2013년으로 넘어가면서 영아 유기나 베이비박스 이용 건수가 갑절 이상으로 늘어난 배경에는 아기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개정 입양특례법이 있다.

 

당초 법 개정의 취지는 입양된 아기가 양부모의 친자식인 양 허위로 출생신고 되거나 위장 입양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혼모 입장에서는 가족관계증명서에 혼외자녀 출생기록이 남아 평생 멍에를 짊어져야 한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북부아동일시보호소 장현병 소장은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키울 능력이 안 되는 청소년과 젊은 여성들은 영아 유기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상담을 받던 미혼모가 '호적에 올려야 한다'고 알려주면 전화를 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아이를 홀로 떠맡은 미혼부의 경우 그동안 아예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아이를 유치원에도 보내지도 못하는데, 입양특례법 때문에 입양마저 길이 막혔다.

 

다행히 지난달 30일 친부도 아기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등 제도적인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고 있다.

 

◇ 베이비박스 폐지론 vs 존치론…정답은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베이비박스 찬반 논란과 관련해 "익명성을 보장받고 아이를 버리는 행위를 조장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는 아이의 입장은 전혀 고려 않은 채 문란한 성의 결과를 아무런 사회적 책임 없이 해결토록 하는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군포시 관계자도 "베이비박스는 '생명존중'이란 가치를 위해 설치됐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생아를 유기할 기회를 열어주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밤중이나 새벽에 아기들이 버려졌지만, 요즘은 대낮에 버려지는 아기도 많다"며 "아기를 버리는 데 대한 죄책감마저 줄어드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존치론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단순히 법률을 손 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못한다는 것이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일차적으로 우리나라 법구조가 미혼모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구조란 점이 문제"라며 "미혼모 자신도 학교를 다니지 못해 자퇴해야 하고 취직도 못 하는 등 사회적으로 천대받는데 홀로 아기를 키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미혼모가 아이를 못 키우면 정부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양부모라도 만날 기회를 줘야 하는데, 입양이 신고제에서 법원 허가제로 바뀌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결국 베이비박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을 것이란 이야기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권희정 연구원은 "엄마들이 아기를 버리지 않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면서 "사회적 지원망을 통해 자립할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서울에서 발견된 유기 아동은 서울에 있는 보육시설로 보낼 수밖에 없는데, 서울시내 보육시설이 거의 만원인 점도 무시하지 못할 문제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전국에서 아이를 버리러 관악구 난곡까지 오는 실정"이라며 "이곳에 오는 아이들을 제대로 수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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