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할머니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2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특별한 '효 잔치'가 열렸다.
나눔의 집과 부설 일본군위안부역사관·국제평화인권센터가 매년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할머니들의 건강을 기원하고자 마련하는 행사다.
특히 이날 잔치는 1916년생(호적)으로 올해 100살을 맞은 정복수 할머니의 상수(上壽)를 축하하는 만수무강 잔치를 겸하는 자리여서 의미를 더했다.
정 할머니는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53명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다. 나눔의 집에는 생존자 중 10명이 머물고 있다.

효 잔치는 오전 10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앞에서 동아방송예술대학 학생들의 노래와 마술, 춤 공연으로 시작됐다.
할머니들은 학생들이 선물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공연을 보며 잠시나마 아픔을 잊고 환하게 웃었다.
평소에 아끼는 한복을 곱게 입고 보석반지를 끼고 머리띠도 두르고 한껏 멋을 부렸다.
할머니들 얼굴은 북적대는 잔치 분위기에 동심으로 돌아가 맑게 빛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족회는 정성껏 쓴 편지를 낭독하고 동아방송예술대 학생들과 KBS 재능나눔 봉사단은 흥겨운 공연을 선보였다.

전국 20여개 중·고교 학생들로 구성된 나눔의 집을 돕는 전국 연합회와 성남시 중·고생들로 꾸려진 성남시한마음봉사단, 시민 등 30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해 잔치의 흥을 돋웠다.
한복을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도 곱게 빗은 다른 할머니들과 달리 정 할머니는 평상복 차림이었다. 인사를 건네자 버럭 호통을 쳤다.
초기 치매 증상이 있어 평소에 미소를 짓다가도 기분에 따라 말투가 변한다.
카메라를 들고 자신을 찍으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지팡이부터 휘두른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그동안 숱하게 언론 등을 통해 목소리를 냈지만 기대한대로 안되다보니 실망감이 커 카메라 든 사람을 보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나눔의 집 관계자는 귀띔했다.

하지만 평소에는 나눔의 집 활동가들을 좋아하고 봉사 온 학생들을 보면 손주처럼 살뜰히 챙기는 속정 깊은 자상한 어머니이자 할머니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아침에 웃다가도 오후되면 욕을 하고 기분이 수시로 변하는 할머니를 볼때마다 안타까움이 크지만 이렇게라도 건강하신 것은 평소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드시는 게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상하원 연설에서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를 회피해 또다시 역사적 진실을 외면했다"며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는 날까지 아픔을 지닌 할머니들, 또 뜻을 같이하는 모든 분과 함께 더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1916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정 할머니는 16살 때 외지 사람의 꾐에 빠져 배를 타고 한달여 동안 가 남양군도(미크로네시아섬)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노무자 복장의 사람들을 상대로 위안부 생활을 했다.
광복 후 고국에 돌아왔으나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초등학생 나이의 아들 1명을 양자로 들여 키웠다. 2년 전 겨울 나눔의 집에 들어와 같은 아픔을 지닌 할머니들과 지내고 있다.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