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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지난해 9월 피투성이가 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여중생의 사진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른바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에서 가해자들은 '말투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피해 학생을 무차별 폭행했다.
이후 가해 학생들은 보호처분 중 가장 무거운 소년원 송치 처분을 받았다.
당시 재판을 맡았던 천종호 판사(부산지방법원)는 가해자들을 따끔하게 혼낸 동시에 피해 학생에게 "내 딸 하자!"며 뜻밖의 제안을 했다.
천 판사는 피해 학생에게 "힘들면 나에게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건넸고, "누가 또 괴롭히거든 이 사진 보여주라"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SBS '학교의 눈물'
그로부터 8개월이 흐른 지금, 부녀지간이 되기로 약속한 천 판사와 피해 학생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2일 천 판사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직접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피해자의 근황을 전했다.
천 판사는 "사실 어제 (피해 학생과) 통화를 했다"며 "5월 8일이 어버이날인데 저한테 찾아오겠다고 해서 같이 식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천 판사에게 고마움을 전하려 피해 학생이 먼저 연락한 것.
앞서 피해 학생은 천 판사가 '내 딸 하자'고 했을 때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며 장문의 감사 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천종호 판사 페이스북
2010년 6월부터 지난 2월까지 8년간 소년재판을 맡았던 천 판사는 부산지방법원으로 옮긴 뒤에도 꾸준히 아이들과 소통 중이다.
천 판사가 교류하고 있는 부산 지역 아이들만 40~50명이 된다.
그동안 천 판사는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에게도 아버지의 역할을 해왔다.
때로는 따끔하게 혼을 내고, 때로는 따뜻하게 안아주며 어른들의 방치 속에 자라온 청소년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천 판사에게 법정은 그저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정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이 깊이 반성하고 다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곳이라 천 판사는 생각했다.
SBS '학교의 눈물'
이러한 철학이 지금의 천 판사를 만들었다.
천 판사는 "100% 소년범 중 중범죄를 저지른 아이는 5%다. 95%는 우리가 보삼필만 제대로 하면 국가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엄벌할 때는 엄벌한다. 다만 벌한 이후 전과자라 낙인찍어 사회 밖으로 내몰면 더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벌 줄 땐 벌을 주고 그 이후에는 우리가 품어야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