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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수백억 재산' 털어 조국 독립운동에 투신한 '우당 6형제'

일제강점기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 재산을 처분한 여섯 형제의 이야기가 재조명되고 있다.

인사이트우당 6형제의 만주 서간도 망명 논의 / 사진 제공 = 서울시


[인사이트] 진민경 기자 = 일제강점기 전 재산을 처분해 독립군 양성 학교를 세운 여섯 형제의 이야기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30일 서울시는 '우당 6형제'가 살아생전 지내던 생가의 복원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서울시는 "독립운동 최고 가문인 우당 6형제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자 이들의 생가를 복원하는 계획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독립운동 최고 가문'이라고 일컬어 지는 우당 6형제는 독립운동가였던 넷째 이회영 선생을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벌인 형제들이다.


인사이트이회영 선생의 부인 이은숙이 1996년 펴낸 자서전 '서간도 시종기' / 사진 제공 = 서울시


이들은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의 아들들로 첫째 이건영, 둘째 이석영, 셋째 이철영, 넷째 이회영, 다섯째 이시영, 여섯째 이호영이다.


여섯 형제와 그 밑에 딸린 식구들까지 40여 명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1910년 겨울, 본가가 있던 서울 명동을 떠나 만주로 향했다.


이회영 선생의 부인 이은숙은 1996년 펴낸 자서전 '서간도 시종기'에서 "여러 형제분이 비밀리에 전답과 가옥, 부동산을 팔았다"며 "여러 집이 일시에 급매하다 보니 제값을 받을 수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 여섯 형제는 만주로 떠나기 한 달 전 가산을 급하게 정리해 돈을 마련했다.


인사이트우당 이회영 선생 / 사진 제공 = 서울시


당시 형제들이 마련한 돈은 40여만원이었고, 쌀 한 섬이 3원이던 것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현재 600억원에 상당하는 거금이었다.


만주 서간도로 망명한 이들은 조선에서 가져간 돈 전부를 쏟아부어 무장독립운동의 토대가 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향후 신흥무관학교는 10년 동안 3천여 명의 정예군을 배출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충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등으로 활약한 김좌진, 이범석, 이청천 장군도 신흥무관학교에서 생도 또는 교관으로 지냈다.


인사이트우당 이회영 선생의 유품 / 사진 제공 = 서울시


이들 형제가 독립운동에 앞장서는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이회영 선생은 1932년 11월 일경에 체포돼 뤼순 감옥에서 고문사했다.


조선의 부호로 호의호식할 수 있었던 이들 형제가 보여준 독립운동에 대한 결의와 행보는 오늘날 후손들에게도 큰 교훈이 되고 있다.


한편 서울시는 형제가 살았던  현재의 명동성당 앞 YWCA 자리가 아닌, 서울 시내 다른 장소에 생가를 복원한 기념관을 지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