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삼대가 흥한다"
매국노 중에서도 악질의 매국노 이완용. 일본 정부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의 잇속만 챙긴 매국노 이완용은 당시 여의도 면적 7.7배에 달하는 땅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많던 친일파의 재산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삼일절인 오늘(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손수호 변호사가 출연해 친일파 재산의 행방을 쫓았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암살'
명망있는 집안의 지식인이었던 이완용은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참패하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친일의 길에 들어섰다.
다른 매국노들은 매국노 축에 못 낄만큼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했던 이완용은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 병탄을 주도하며 일제의 신임을 얻는다.
그 대가로 엄청난 돈을 받았고 이완용은 그 돈으로 땅을 사서 매매하는 것으로 재산을 불렸다.
현금 자산만 200만원, 지금 돈의 가치로 보면 600억원 정도다. 여기에 여의도 7.7배에 달하는 땅을 갖고 있어 조선에서 이완용 땅을 밟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말까지 돌았다.
영화 '암살'
독립운동에 앞장선 투사들이 채 꽃도 피우지 못하고 죽어갈 때 이완용은 호의호식하며 69세에 숨을 거둔다. 그 시대로선 '장수(長壽)'를 한 셈이다.
이완용이 죽자 후손들은 해방되기 전 일찌감치 부동산 대부분을 팔아 현금화했다.
손 변호사는 "일단 현금화가 됐기 때문에 그 후 어디로 재산이 흘러들어갔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친일파 재산 몰수가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암살'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완용 후손들은 1992년 서울 북아현동에 있는 땅이 자기네 소유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재판부는 이완용 후손의 손을 들어준다.
당시 법원은 "반민족행위자나 그의 후손이라고 하여도 법률에 의지하지 않고 재산권을 박탈하거나 그 재산에 대한 법의 보호를 거부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시했다.
소송에서 이긴 이완용 후손들은 북아현동 땅을 30억에 팔아 그 돈을 들고 캐나다로 이주했다.
SBS 8시 뉴스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친일파 재산 환수 운동이 벌어졌다.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했지만 국가가 지금까지 환수한 이완용 일가의 땅은 약 3300평에 불과하다.
이는 이완용 소유의 땅 중 겨우 0.0.5% 수준이다. 무고한 조선인들을 갈아 배불린 친일파의 재산은 지금도 후손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김현정 아나운서는 "친일 행위로 만든 재산이 버젓이 대물림 되고, 심지어는 더 얻겠다고 재산 내놓으라고 소송까지 벌이고 있으니 기막힌 일"이라며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