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금)

학생 신분으로 맨 앞에서 만세 행진하다 왼팔 잘린 윤형숙 열사

인사이트윤형숙 열사 / 국가보훈처


[인사이트] 최민주 기자 = 꽃다운 스무살 처녀는 팔이 잘리고 한쪽 눈을 잃어가면서도 독립을 부르짖는 목소리를 드높였다.


삼일절인 오늘은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압박에 항거하며 전 세계에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기 위해 평화적 시위를 전개한 3.1운동을 기리는 날이다.


국권을 뺏긴 이후 광복을 되찾을 때까지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피와 눈물로 '대한독립'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다.


독립을 위해 힘썼던 위인들 중 역사적으로 안중근,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처럼 유명한 인물들도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투사들이 훨씬 많다.


인사이트3.1 운동을 재현하는 시민들 / 연합뉴스


윤형숙 열사도 그 중 한명이다. 1900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 지역 최초의 여성중등교육기관 수피아여학교(현 수피아여고)에 진학했다.


당시 수피아여학교는 광주 숭실학교와 함께 호남 지역 항일운동의 본거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윤형숙 열사는 학교에서 반장을 도맡아 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한다.


항일 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1919년 3월. 광주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었다.


같은달 10일, 윤형숙 열사는 학생들을 비롯한 1천여명의 군중을 이끌고 맨 앞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는 이날 만세 시위에 기마헌병을 투입해 시위자들을 체포했다.


인사이트일본군이 휘두른 칼에 팔이 잘려나간 윤형숙 열사 / 국가보훈처 공식 블로그


이 과정에서 윤형숙 열사의 태극기를 든 왼팔은 군도에 의해 잘려나갔다. 그러나 그는 남은 오른팔을 들어 태극기 다시 쥐었고 더욱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시위 후 윤형숙 열사는 한쪽 팔을 잃고 오른쪽 눈마저 실명된 처참한 모습으로 군부대에 구금됐다. 


시위의 주동자로 지목된 윤 열사는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4월형을 선고받고 4년간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비록 불구의 몸이 됐지만 윤형숙 열사의 저항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광복 전까지 항일 운동과 선교활동, 문맹 퇴치 운동에 앞장섰다.


인사이트윤형숙 열사 표창증 / 국가보훈처 공식 블로그


그러나 해방된 조국에서는 다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고 1950년 9월 28일 밤, 윤형숙 열사는 인민군의 총탄에 숨을 거뒀다.


청춘과 인생을 바치며 조국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윤형숙 열사. 지난 2004년 정부에서는 윤 열사의 이같은 공훈을 기려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후손들이 당당하게 하늘을 우러르며 살 수 있게 한 또 한명의 주인공 윤형숙 열사. 그의 무덤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왜적에게 빼앗긴 나라 되찾기 위해 왼팔과 오른쪽 눈도 잃었노라. 일본은 망하고 해방되었으나 남북 · 좌우익으로 갈려 인민군의 총에 간다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최민주 기자 minjoo@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