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17일(목)

조선에서 쌀 수탈해 배 채우던 일본군이 하나둘 죽기 시작했다

인사이트영화 '마이웨이'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아시아의 해방과 평화를 위해!"


일본은 서구 열강에 맞서 싸우며 아시아 국가의 평화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우리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구한말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고, 지난 1910년 한일강제합방까지.


일본의 침략은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본의 손아귀에서 자유를 억압당하고 강제로 재산을 빼앗기며 고통에 신음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일본의 야욕. 그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역풍을 맞았던 사건이 있었다.


때는 약 100여년 전인 러일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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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조선과 만주 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약 1년 반 동안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쥔 일본은 사실상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 만주 지역까지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일본군에는 러일전쟁으로 인한 출혈이 생각보다 매우 심각했다.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 중 부상을 당한 병사들도 다수 존재했지만 질병에 걸려 팔다리가 퉁퉁 붓고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하는 일반 환자가 속출했다.


일본군 내에서는 이같은 증상을 보이는 병사들이 어느 순간부터 급증했고, 마치 전염병처럼 창궐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당시의 일본 군의관들. 사실 일본 병사들은 '각기병'에 걸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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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병은 영양실조의 일종으로, 비타민 B1의 결핍으로 인해 심부전과 말초 신경 장애를 유발하는 질환이다.


구체적으로 단기 기억력 상실, 하지 마비, 호흡곤란 등을 유발하며 군인의 전투력은 물론 일상생활까지 큰 지장을 미친다.


일본 육군의 의료기록인 '메이지 전쟁 육군 위생사'에 따르면 러일전쟁 당시 각기병 환자가 11만 751명에 이를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갑작스럽게 일본 군인들이 각기병에 걸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비밀은 바로 '쌀밥'에 있었다.


음식을 구하거나 조달하기 힘든 상황에서 일본군은 병사들에게 어마어마한 쌀밥을 제공했다. 별도의 부식을 제공할 여력이 없으니 밥으로 배를 채운 고육지책이었다.


그런데 흰 쌀밥을 너무 먹은 나머지 심각한 영양 불균형에 빠졌고, 비타민 B1이 부족해 단체로 각기병 증상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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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각기병에 걸릴 정도로 쌀밥을 많이 먹은 일본군은 그 많은 쌀을 도대체 어디서 조달했냐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에서 쌀을 강제 수탈해 군에 제공했다.


한일강제합방이 체결됐던 1910년, 일본은 조선에서 생산된 쌀 중 약 5%가량을 수탈했다. 본격적으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수탈해가는 쌀의 양은 점차 늘었고, 태평양 전쟁 무렵에는 수탈이 극에 달했다.


물론 러일전쟁 당시에 일본이 수탈했던 쌀의 정확한 양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병사들에게 제공하고도 남을 정도로 막대한 양의 쌀을 수탈했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분석했다.


조선에서 농민들이 피땀 흘려 생산한 쌀을 수탈했던 일본. 그 야욕에 하늘이 노했던 것일까.


일본군 11만명은 강제로 빼앗은 쌀로 배를 채우다 죗값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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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