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3일(화)

후손에게 '민주주의' 안겨주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열사 7인

인사이트(좌) 나무위키 (우) 사진 제공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2018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투표일이 되면 직접 동사무소나 인근 학교를 찾아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


우리에게는 학창 시절 배운 선거의 4원칙(보통·평등·직접·비밀)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이러한 선거 방식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었다.


실제 한국에서는 군사독재 시절이었던 지난 1972년 발표된 유신 헌법에 따라 간접선거제가 채택됐다.


그리고 이는 전두환이 독재 정치를 펼쳤던 제5공화국 시절에도 이어졌다.


자국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또 군사정권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화를 부르짖는 국민들을 처참히 학살하고 고문했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결과로 16년 만에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지만 그 시절에는 당연하지 않았던 민주주의.


후손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물려주기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민주주의 열사들을 소개한다.


지면 사정상 명단에 싣지 못한 열사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1. 김주열 열사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자유당 독재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해 일어났던 3∙15 의거에서 희생된 김주열 열사.


고인의 시체는 지난 1960년 4월 11일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중앙부두로 떠올랐다.


그가 불어넣은 뜨거운 정의의 바람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2. 박동훈 열사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3∙15 의거에 참석했던 박동훈 열사는 4·19 혁명이 벌어진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앞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망우리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던 고인은 이후 4.19 묘역으로 옮겨졌다.


3. 윤상원 열사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노동운동가였던 윤 열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약했다.


광주시민의 눈과 귀와 입이었던 '투사회보'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던 그는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본관에서 계엄군에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4. 김의기 열사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서강대학교 무역학과에 재학하던 대학생이었다.


1980년 5월 30일 종로 4가 기독교 방송국 6층에서 신군부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린 뒤 떨어져 사망했다.


5. 박종철 열사


인사이트나무위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 열사는 끔찍한 고문이 자행되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다.


동료의 위치를 실토하라는 경찰에 요구에도 입을 열지 않던 박 열사는 결국 차디찬 고문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6. 이한열 열사


인사이트사진 제공 = 한국학중앙연구원


1987년 6·10 국민 대회를 하루 앞둔 6월 9일, 연세대학교 앞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던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진 이 열사가 결국 사망하자 국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이후 전국 33개 도시에서는 하루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6월 민주 항쟁의 정점이자, 6·29 선언의 시작이었다.


7. 국민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당시 민주화는 모든 국민의 염원이었다.


앞장섰든, 뒤를 따랐든 당시를 살았던 우리 국민 모두가 민주화의 영웅이다. 


영화 '1987' 깜짝 관람한 문재인 대통령이 남긴 관람평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1987'을 관람한 문재인 대통령이 작품에 대해 뜻깊은 감상평을 남겼다.


황기현 기자 kihyu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