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매년 명절이 되면 자신을 성추행했던 가해자와 얼굴을 보고 함께 지내야 하는 한 여대생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추석 연휴 엿새째인 5일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에는 고대에 재학 중인 한 여대생 A씨가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을 공개해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24살 여대생이라고 소개한 A씨는 "스물넷 평생 아무에게도 말 못했던 얘기를 해볼까 해요. 그냥 누가 들어주기라도 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생 마음 속에 간직했던 비밀을 고백한 A씨(자료 사진) / Gettyimages
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상처를 품고 살았을까.
A씨는 "자신을 성추행 했던 성범죄자랑 매년 얼굴을 보는 사람이 저말고 또 있을까요? 저는 명절 때 마다 한집에 모여 얼굴을 보고 같이 명절을 지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매년 아무렇지 않게 넘겼는데 이번 추석이 특히 힘드네요"라며 "아마 다섯살 때의 일일 거예요. 친가 삼촌, 즉 아빠의 셋째 남동생이 저를 성추행 했었어요"라고 고백했다.
어린 시절 끔찍한 악몽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A씨(자료 사진) / 연합뉴스
너무 어려서 기억이 흐릿할 것 같지만 A씨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삼촌이) 저를 방으로 데려가서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했었어요. 이게 뭔지 아냐고. 신기하지 않냐고. 한번 만져보라고. 아마 제 성기도 만졌던 것 같아요. 수 차례 그랬었어요"라고 분노했다.
이어 "나중에 집에 와서 제가 부모님께 삼촌이 이런 행동을 했었다고 말하면서 부모님이 알게 되셨어요. 그 때 엄마는 전화기를 붙잡고 분노했고, 울었고, 저는 왜 일찍 말하지 않았냐며 혼났어요"라고 전했다.
A씨는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되면 예전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힘들다고 했다(자료 사진) / 연합뉴스
A씨는 "아빠도 옆에서 화도 냈지만 아무말도 못하고 미안하다고만 하셨어요"라며 "다섯 살때의 일이라 이제 잊을만도 한데 여전히 생생하네요.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아요"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삼촌이 집안에서 '아픈 손가락'이라는데 있다. 얼굴을 보고싶지 않지만 삼촌은 신체적으로 장애도 있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벌어기도 한다(자료 사진) / 연합뉴스
문제의 삼촌은 할머니 집에 그냥 얹혀살고 있는데 연로하신 할머니를 명절이 아니면 뵙기 어려워 '그 인간'의 꼴도 보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나야만 한다.
A씨는 "내년 설에는 제가 교환학생을 가서 안볼텐데, 올해 추석엔 또 봐야겠죠? 안내려가면 할머니가 진짜 서운해 하시면서 찾으시거든요"라고 푸념했다.
그는 "그냥 할머니 돌아가실 때 까지만 참아야되나봐요. 익명으로 올리지만 누군가 제 얘기라는 걸 알아주고 힘들었겠다고 와서 토닥토닥 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글을 맺었다.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해당 게시글이 공개되자 많은 누리꾼들이 함께 분노하면서 글쓴이를 위로했다.
누리꾼들은 "상처 준 사람은 잘 살아가는데 상처받은 사람은 힘들게 산다", "가까운 가족이 때로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국내 성범죄 사건을 살펴보면 가까운 지인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돼 강력한 처벌이 시급한 상황이다.
(자료 사진) / Gettyimages
한편 형법 305조에 따르면 "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강간(3년 이상의 유기징역), 유사강간(2년 이상의 유기징역), 강제추행(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 강간/유사강간 등의 죄를 범한 자가 저지른 상해(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등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처벌 조항에도 불구하고 실제 준엄한 법 집행은 미흡한 실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아래 글은 A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전문이다.
스물넷 평생 아무에게도 말 못했던 얘기를 해볼까 해요. 그냥 누가 들어주기라도 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자신을 성추행 했던 성범죄자랑 매년 얼굴을 보는 사람이 저말고 또 있을까요? 저는 명절 때 마다 한집에 모여 얼굴을 보고 같이 명절을 지냅니다.
매년 아무렇지 않게 넘겼는데 이번 추석이 특히 힘드네요.
아마 다섯살 때의 일일 거예요. 성범죄라고 말하기도 아직은 어색하고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친가 삼촌, 즉 아빠의 셋째남동생이 저를 성추행 했었어요. 저를 방으로 데려가서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했었어요. 이게 뭔지 아냐고. 신기하지 않냐고. 한번 만져보라고. 아마 제 성기도 만졌던 것 같아요. 수 차례 그랬었어요. 나중에 집에와서 제가 부모님께 삼촌이 이런 행동을 했었다고 말하면서 부모님이 알게 되셨어요. 그 때 엄마는 전화기를 붙잡고 분노했고, 울었고, 저는 왜 일찍 말하지 않았냐며 혼났고 엄마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됐었어요. 아빠도 옆에서 화도 냈지만 아무말도 못하고 미안하다고만 하셨어요. 다섯 살때의 일이라 이제 잊을만도 한데 여전히 생생하네요.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아요. 중요한건 여전히 얼굴을 보며 지낸다는 거죠. 이번 추석에도 시골에 내려갔더니 그새끼가 있더라구요. 진짜 끔찍하고 볼때마다 뭘 잡고서라도 후려치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요. 이렇게 참고 매년 내려가는 이유는 할머니 때문이에요. 할머니가 연세가 꽤 있으신데 저희를 일년에 명절에 딱 두번 보세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온 가족이 다 명절에 내려갑니다. 저도 혼자살면서 아들들만 바라보고 사는 할머니가 너무 안쓰러워서 매년 내려갑니다. 할머니만 아니면 정말 얼굴도 안봤을 거에요.
그새끼는 할머니의 아픈손가락이에요. 네 명 아들 중 유일하게 장가도 못가고 사람구실을 못하거든요. 장애인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 새끼는 장애인이에요. 신체적으로 절름발이에다가 정신도 장애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멀쩡하게 명절때마다 제 얼굴을 보죠. 아무튼 저희집은 첫째이고 잘산다는 이유로 그새끼 생활비도 대고 있습니다. 보험료도 내줘요. 아빠는 첫째이고 가부장적이에여. 그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이에요. 할머니가 부탁하셨거든요. 아빠는 할머니 일이라면 정말 앞뒤안가리는 것 같네요.
명절에는 여느 집처럼 며느리들이 일을 다 합니다. 온 가족이 모이면 20명이 약간 안되는데 그 식구들의 삼시세끼, 간식, 술상을 챙기고 차례상도 차립니다. 저도 딸이고 첫째라 어느새 엄마를 도와서 일을 하고 있어요. 사실 해야돼서 한다기보다는 제가 안하면 엄마 일이 늘어나니까 하고 있어요. 이번 추석에도 그 새끼는 아무렇지 않게 제가 차린 밥을 쳐먹고 저는 그 새끼의 밥상을 치웁니다. 그 병신같은 새끼는 지 방에 있다가 밥 때 되면 나와서 밥만 쳐먹고 다 먹으면 그냥 들어갑니다. 진짜 꼴뵈기싫어 디지겠어요.
몇 년 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내 왔어요. 저는 잘 살고 있거 그새끼는 장애인이 됐고 인생도 거지같이서 벌받았다고 위로를 했거든요. 근데 이번 추석 이틀 내내 얼굴 보고 있는게 왜이렇게 힘들었을까요. 방금 집에와서 자려고 누웠는데 한없이 눈물이 나네요. 내년 설에는 제가 교환학생을 가서 안볼텐데, 추석엔 또 봐야겠죠? 안내려가면 할머니가 진짜 서운해 하시면서 찾으시거든요... 또 저 때문에 그 화목한 명절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요.
물론 만나면 말 한마디 안하고 지냅니다. 닿는 것도 싫어요. 그 새끼도 저한테 말은 안걸어요.. 이제와서 신고하고 싶어도 아빠랑 할머니 때문에 못하겠어요. 지금 엄청 화목한 가정이거든요.. 그리고 부모님은 제가 기억하고 있단 사실을 모릅니다. 할머니는 아마 그 사건이 있었단 것도 모르실거에요. 그냥 저만 참으면 되는 줄 알고 버텼는데 이제와서 힘드네요. 10살때는 집 앞에서 모르는 아저씨가 제 옷 속으로 손을 넣어서 성기를 만진 다음에 도망간적도 있어요. 이건 부모님께 말씀도 안드렸네요. 왜 저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오늘따라 눈물이 계속 나서 잠을 잘 못자겠어요. 그냥 누군가 알아주고 위로해줬으면 좋겠어서... 이게 뭐가 힘든 일이라고. 그냥 할머니 돌아가실 때 까지만 참아야되나봐오.
아마 부모님 욕할 분들도 계실텐데 깊은 속사정을 다 말할 수 없으니, 그것 보단 그냥 누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익명으로 올리지만 누군가 제 얘기라는 걸 알아주고 힘들었겠다고 와서 토닥토닥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마 평생 못말하겠죠? 그래도 이렇게 글로나마 적으니까 좋네요.
황기현 기자 kihyu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