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5일(월)

한국 전쟁서 북한군 상대로 나라 구한 '영웅 기관사' 김재현 (영상)

인사이트채널 A '사심충만 오! 쾌남'


[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6·25 한국 전쟁서 포로로 붙잡힌 미군 소장을 구출하려다 순직한 영웅 기관사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지난 4일 방송된 채널 A '사심충만 오! 쾌남'에서는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주제로 출연진들이 대화를 나눴다.


인사이트채널 A '사심충만 오! 쾌남'


방송에 따르면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은 우리 나라를 돕기 위해 미 제8군 24사단 소속 별동 부대인 '스미스 부대'를 파병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파병한 최초의 지상군이었던 이들은 경기도 오산 부근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치렀다.


인사이트채널 A '사심충만 오! 쾌남'


그러나 북한군에 비하면 전투 경험이 전무한 수준이었던 탓에 스미스 부대는 약 6시간 만에 패배했다. 


결국 스미스 부대는 무너진 방어선을 뒤로 한 채 퇴각하기 시작했고, 부대를 통솔하던 윌리엄 F. 딘 소장은 퇴각 중 북한군의 포로가 됐다.


그런데 맥아더 장군의 모든 전술을 알고 있던 딘 소장은 전쟁에 굉장히 중요한 존재였다. 이에 딘 소장 구출을 위한 미 해병 결사대 33인이 조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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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작전을 위해 기관차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두려움을 느낀 기관사들이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것이다.


다급해진 미군은 지원을 호소했고, 결국 김재현 기관사가 작전에 지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8세였다.


1남 1녀를 둔 가장이었던 그는 떠나기 전 "작전 성공과 함께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끝내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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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포격을 뚫고 달리던 김 기관사의 온몸에 북한군의 흉탄 8방이 날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가감변(증기 기관차 속도 조절 장치)을 놓지 않았다.


당시 딘 소장은 결국 발견되지 않았고, 결사 대원과 기관차 승무원 36명 중 생존한 사람은 세 사람뿐이었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지난 2012년 김 기관사의 희생에 대해 '특별 민간 봉사상'을 수여했다. 


지난 2015년 코레일도 대전역 코레일 본사 앞 동광장에 김 기관사의 동상을 설치하며 숭고한 희생을 기린 바 있다.


Naver Tv '채널 A 사심충만 오! 쾌남'


황기현 기자 kihyu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