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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선생님 12인

차가운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자신의 안위보다 제자들을 먼저 생각한 선생님들이 안타깝게 희생당했다.

인사이트양승진 선생님 / 온라인 커뮤니티


[인사이트] 김나영 기자 = "선생님은 너희 다 구하고 나중에 나갈게 걱정마"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차가운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자신의 안위보다 제자들을 먼저 생각한 선생님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사고 당일 단원고 선생님들은 모두 비교적 배에서 빨리 탈출할 수 있었던 5층 교사 선실에 있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사고 직후 선생님들은 곧장 제자들을 향해 4층 선실로 달려갔다.


같이 탈출하자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아직 배에서 나오지 못한 제자들을 구하러 갔던 선생님들은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생존한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지도 못한 채 "어서 빨리 탈출하라"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선실 곳곳을 누비던 선생님들의 뒷모습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과 살아남은 고통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강민규 교감 선생님을 포함해 세월호 참사에 희생당한 선생님 12분의 이야기를 모아봤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참사 3년 만에 물 위로 떠오른 세월호 안에서 미수습자 9명이 모두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자들을 살리다 세상을 떠난 선생님들의 희생 정신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자.


1. 양승진 선생님 - 미수습자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단원고 일반사회 담당, 인성생활 부장교사였던 양승진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아직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중 한 명이다.


아이들은 지금도 절뚝 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아직 탈출하지 못한 학생들을 구하러 다시 선실 안으로 들어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마지막까지 양승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내어주며 "탈출하라"고 소리치다 세월호와 함께 물 속으로 사라졌다.


2. 고창석 선생님 - 미수습자


인사이트연합뉴스


단원고 인성생활부 체육 교사인 고창석 선생님은 지난 2014년 3월 단원고로 발령받은 지 한 달여 만에 사고를 당했다.


아이들은 고창석 선생님은 '또치쌤'으로 부르며 유독 따랐다고 한다.  


제자들은 선생님의 마지막을 "빨리 배에서 탈출해라"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며 분주히 객실 곳곳을 뛰어다니던 모습으로 기억한다.


결국 고창석 선생님은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 배에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실종돼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3. 유니나 선생님


인사이트Twitter 'minjuyawara'


경상대 사범대학 일어교육과에 다니며 국가 전액 장학생이었던 유니나 선생님은 임용고시 합격 후 단원고로 첫 발령을 받았다.


처음 부임받은 학교에서 근무한지 4년 째인 2014년 4월 16일 유니나 선생님은 2학년 1반 담임 선생님으로 아이들과 함께 수학여행길에 올랐다.


자신이 맡은 1반 학생 19명을 탈출시킨 유니나 선생님은 배 안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아이의 전화를 받고 다시 선실로 들어갔다. 


유족들에 따르면 유니나 선생님의 휴대폰 마지막 전화 통화 역시 학생이었다. 결국 유니나 선생님은 참사 54일 만인 6월 8일 3층 식당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4. 전수영 선생님


인사이트연합뉴스


전수영 선생님은 고려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단원고에 첫 부임을 받았다.


부임 첫해 담임을 맡았던 1학년 학생들과 함께 하고싶다는 마음에 2학년 담임을 자원, 학생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 위한 마음을 가득안고 세월호에 탑승했다.


전수영 선생님은 사고 직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연락이 두절됐다.


세월호 참사 한달 만인 5월 19일 선생님은 구명조끼도 입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선실 후미에서 발견됐다.


5. 남윤철 선생님


인사이트YTN


'세월호 영웅'으로 불린 남윤철 선생님은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수재였다.


남윤철 선생님은 사고 직후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구명조끼를 착용시켜 제자들을 구해냈다.


당시 학생들은 "남윤철 선생님이 자기 구명조끼를 벗어 학생에게 줬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남윤철 선생님은 배 안에 남은 학생들과 함께 비상구 쪽으로 향하다 실종, 선실 후미에서 발견됐다.


6. 이지혜 선생님


인사이트Twitter 'minjuyawara'


단원고에서 국어를 담당하신 이지혜 선생님은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 심사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지혜 선생님은 세월호 참사 당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4층 객실로 달려갔다.


이후 선생님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학생들과 함께 하다 구명조끼도 입지 못한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7. 김초원 선생님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단원고에서 화학을 담당한 김초원 선생님은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이 생일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초원 선생님은 학생들이 생일을 맞아 써준 33통의 편지를 펴보지도 못한 채 생일날 눈을 감았다.


사고 직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4층 객실로 내려왔다가 희생 당했지만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 심사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8. 김응현 선생님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단원고 화학 담당 선생님인 김응현 선생님은 학생들이 "아빠"라고 부를 정도로 자상한 선생님이었다. 


충북대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졸업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가끔 시를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줄 줄도 아는 낭만파 선생님이었다.


김응현 선생님은 2014년 3월 1일 단원고에 부임, 한달 반 만에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내 아들 생일을 하루앞둔 5월 14일 구명 조끼도 입지 못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생존 학생들에 따르면 선생님은 사고 직후 제자들을 구출하러 4층 선실로 들어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9. 이해봉 선생님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단원고에서 역사를 담당한 이해봉 선생님은 사고 직후 선박 난간에 매달린 제자 10여 명을 탈출시켰다.


이후 선생님은 선실에 갇힌 제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다시 배로 들어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이해봉 선생님은 사고 후 한달이 채 되지 않은 5월 5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10. 최혜정 선생님


인사이트SBS


동국대 사범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최혜정 선생님은 2년차 새내기 교사였다.


최혜정 선생님은 사고 직후 학생들이 같이 밖으로 나가자고 하자 "걱정하지마 너희들부터 나가고 선생님은 나중에 나갈께"라는 말을 남기고 구조를 기다리는 제자들에게로 달려갔다.


많은 제자들을 구조했으나 본인은 구명조끼도 입지 못한 채 참사 한달여만인 5월 3일 4층 객실에서 발견됐다.


11. 박육근 선생님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단원고에서 미술을 가르친 박육근 선생님은 어머니가 임신하여 두근 반 세근반 가슴이 두근거려 "육근"이라 이름지었다.


전북대 미술교육학과 1회 졸업생인 박육근 선생님은 2학년 부장교사로 근무하며 2014년 4월 16일 학생들과 함께 수학여행길에 올랐다.


박육근 선생님 역시 4층에 있다 밖으로 나온 아이들을 탈출시키고 배 안에 남은 학생들을 구출하기위해 4층 선실로 다시 내려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선생님을 기억하는 한 제자는 "힘들 때 나를 꼭 안아주셨다. 다시 돌아와 저를 안아주세요"라고 말해 주변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12. 강민규 교감 선생님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본래 강민규 교감 선생님은 세월호 참사에서 학생 10여명을 살리고, 참사에서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 속에 두고 홀로 살아남은 고통과 자책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강민규 교감 선생님이 남긴 마지막 유서에는 "혼자 살기엔 벅차다. 책임을 지게 해달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 쓰여있어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김나영 기자 nayoung@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