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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연인과 재회했지만"…故 김군자 할머니의 슬픈 사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군자 할머니가 지난 23일 별세하면서 과거 일제의 만행을 고발했던 김 할머니의 사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군자 할머니가 지난 23일 별세하면서 과거 일제의 만행을 고발했던 김 할머니의 사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07년 미국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 환경 소위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동원됐던 할머니들이 출석한 가운데 청문회를 개최했다.


당시 故 김군자 할머니는 이용수 할머니 등과 함께 증인으로 출석해 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과정과 일본군들로부터 겪은 수모와 성폭행 등을 털어놨다.


지난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0살 때 아버지를, 14살 때 어머니를 잃고 친척 집으로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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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6살이 되던 해 위안부에 강제 동원된 김 할머니는 중국 지린 성 훈춘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


이후 3년간 이어진 지옥 같은 생활을 견디기 힘들었던 김 할머니는 7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자살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오히려 몰매를 맞은 뒤 일본군에게 감시까지 당한 것으로 알려져 분노를 자아냈다.


또 김 할머니는 "성폭력을 거부했다가 죽도록 얻어맞아 고막이 터졌다"는 한을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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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광복을 맞은 후 김 할머니는 무려 38일을 걸어 함경도에 도착해 과거 사랑했던 남자와 재회했다.


하지만 남자의 집안은 김 할머니가 위안부였다는 이유로 결혼을 극렬히 반대했고 이러한 상황에 괴로워하던 남자는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이어 당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조차 5개월 만에 숨지며 김 할머니는 평생을 외롭게 살아야 했다.


이에 대해 故 김군자 할머니는 청문회에서 "종군위안부 생활은 인간의 생활이 아니었으며 일본군들은 인간의 탈을 쓴 늑대보다 더 못한 놈들"이라면서 "일본은 전쟁 당시 잔학성을 시인하고 과거 오류들에 대한 역사를 똑바로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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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제 많은 할머니가 죽었지만, 역사는 살아있을 것"이라며 "돈으로 망가진 내 인생을 보상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처럼 일제의 만행으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온 김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전 재산 2억 5천여만원을 모두 장학금으로 기부해 감동을 자아냈다.


실제로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통장 잔고는 20만원에 불과했다.


한편 김 할머니는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던 중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되며 지난 23일 별세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장례비만 남기고 '2억 5천' 기부하고 떠난 위안부 피해자 故 김군자 할머니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군자 할머니는 자신의 장례비를 제외한 전 재산을 모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황기현 기자 kihyu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