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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종철 물고문 진실 세상에 처음 폭로한 '양심 의사' 근황

故 박종철의 시신을 검안했던 오연상 원장은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인사이트

youtube 'oysmd'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6월 민주항쟁을 그린 영화 '1987'이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실제 '1987년'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보낸 실존 인물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그중 故 박종철 민주열사의 물고문을 세상에 처음 알렸던 '양심 의사' 오연상 원장이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 9일 tbc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는 故 박종철의 시신을 가장 먼저 검안하고, 사망의 진실을 밝힌 오연상 원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당시 용산병원에서 전임강사로 근무하고 있었다는 오 원장은 "87년 1월 14일 오전 11시 30분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며 정확한 날짜부터 시간까지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인사이트영화 '1987' 


그는 "진료부장 겸 내과과장 박 교수님이 전화해 '남영동 대공분실에 긴급왕진 요청이 들어왔는데 보통은 응급실 당직 레지던트가 가지만 이건 상황이 심각해 보이니 교수가 가는게 좋겠다. 응급실로 내려와라'라고 말씀하더라"라며 말문을 열었다.


박 교수의 지시대로 응급실에 갔더니 남영동에서 온 형사 세 명이 오 원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 원장은 응급 장비를 챙기고 응급실 간호사와 함께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구급차는 남영동으로 향했다. 처음부터 검안을 부탁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상태가 위중한 환자를 살려달라'고 오 원장에게 말했다.


오 원장은 "제 추측으론 왕진 요청을 하러 형사들이 출발했을 때 박종철 군이 살아 있었던 거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인사이트영화 '1987'


병원에서 남영동까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니 5분 정도 걸렸다. 그사이 형사들은 오 원장에게 사건 경위를 알렸다.


조사를 받던 학생이 술을 많이 먹었는지 물을 달라고 요청했고, 학생이 주전자째 물을 벌컥벌컥 마시다가 갑자기 숨을 안 쉬었다는 게 형사들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막상 남영동에 도착한 오 원장은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자마자 형사가 거짓말했음을 알아챘다.


오 원장은 "방 안에 하얀색 욕조가 있고, 자연스럽게 오른쪽에 환자가 누워있는데 바닥에서 30% 정도 올라와 있는 평상, 다리 없는 침대에 팬티만 입은 젊은 남자가 누워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다 젖어 있더라"라고 당시를 설명했다.


이어 "당연히 바닥에도 물이 많고, 그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건 몇 가지 밖에 없었다. 저 욕조에 물이 차 있었겠구나, 그리고 저기 들어갔다 나와겠구나. 그러다 무슨 사고가 생겼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인사이트영화 '1987'


형사들은 당장 오 원장에게 박종철 군을 병원 응급실로 옮기자고 했다. 하지만 이를 막은 것은 오 원장이었다.


오 원장은 "사망상태였지만 심폐소생술을 30분 했다. 그동안 한 번도 소생이 안됐다. 그 상태로 병원에 옮겨서 심장제세동기 같은 걸 써서 한다고 하더라도 소생될 가망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또 있었다. 그는 "(환자를 옮기면) 사망 장소가 바뀐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용산병원 응급실로 바뀌는 것이다.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변화가 생길 것이고, 그래서 좋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사망 장소가 '용산병원 응급실'로 바뀌는 순간 진실이 묻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 짧은 순간에도 한 것이다.


다만 오 원장은 당시 '물고문'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다.


오 원장은 "그건 내가 목격한 상황이 아니니 확신에 차서 그렇게 얘기하면 더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다. 오히려 색깔론으로 몰릴 수도 있고. 그래서 '나는 사실에 입각해서 본 대로만 얘기하는 게 더 낫겠다'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인사이트영화 '1987'


오 원장의 소신은 '박종철 사망'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당시 경찰은 기자회견을 열어 "책상을 치니 '억' 하고 죽더라"라며 박종철 군의 사망을 단순 쇼크사로 단정 지었다.


그러자 기자들이 검안의였던 오 원장을 찾아왔다. 오 원장은 진실을 바라는 기자들 앞에서 거짓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는 "만약 양심에 따라 이야기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면 평생 동안 내가 나를 괴롭힐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경찰에 끌려가거나 고문을 당하는 일보다 의사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는 게 오 원장에겐 더욱 무섭고 괴로운 일이었다. 


인사이트영화 '1987'


결국 오 원장은 기자들에게 직접 '물고문'이라 말하진 않았지만 '물고문'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음을 적극 설명했다.


실제로 오 원장은 기자들과의 인터뷰 이후 검찰 조사를 24시간 받고, 연이어 신길동으로 임의동행돼 16시간 정도 추가 조사를 받았다.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에 오 원장은 "내가 죄지은게 없는데 뭐가 무섭겠냐. 바른대로 얘기하면 되니까"라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오 원장의 꿋꿋한 소신과 가치관이 결국 故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을 푸는 열쇠가 됐다.


인사이트연합뉴스 


현재 오 원장은 후임을 양성하는 일을 그만두고 2009년부터 개원해 당뇨병 환자들을 위해 살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 오 원장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나라다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자기 일을 충실히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저 같은 의사는 환자 잘 보고 정치인들은 정치 잘하시고, 그렇게 하면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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