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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망쳐 부모님께 혼나 울고 있는 동생에게 누나가 쓴 편지

수능시험을 망쳐 엄마와 말 다툼을 벌인 남동생을 생각하고 공대생 누나가 쓴 장문의 위로 편지가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

인사이트지난달 23일 수능 시험이 치러졌다(자료 사진) / 연합뉴스


[인사이트] 이유리 기자 = 수능시험을 망쳐 엄마와 말 다툼을 벌인 남동생을 생각하고 공대생 누나가 쓴 장문의 위로 편지가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에는 시험을 뜻대로 잘 치르지 못한 고3 남동생을 격려한 '츤데레' 누나의 글이 공개돼 이목을 끌었다.


인사이트서울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글쓴이는 서울대 공대에 재학 중인 여대생 A씨로 지난달 23일 수학능력시험 가채점을 확인한 남동생이 눈물을 흘린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남동생은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씩씩한 사내아이로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눈물을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상남자 동생'이었다.


그런데 시험을 본 뒤 가채점 결과를 확인하고 어머니와 대화를 하던 중 크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사이트

인사이트수능 가채점 결과 수험생들의 희비가 엇갈렸다(자료 사진) / 연합뉴스


시험을 보고 가채점을 한 남동생이 어머니에게 "엄마는 왜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도 안 해줘?"라고 서운한 듯 물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시험 결과에 실망했던 나머지 "네가 수고하기는 뭘 했니. 시험을 그렇게 봐 놓고"라고 대답하셨던 것.


물론 아들이 시험을 망쳐서 답답하고 속상했던 탓에 그렇게 말하셨던 것이지만 남동생은 그런 대답을 듣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인사이트A씨의 동생은 수능을 잘 보지 못했다고 한다(자료 사진) / 연합뉴스


A씨는 남동생을 위로해 주고 싶어서 방으로 따라 들어갔는데 평생 처음 보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덩치는 산처럼 커다란 녀석이 어깨를 들썩이면서 크게 소리를 내어 엉엉 울고 있었던 것이다.


난생 처음 보는 모습에 너무 놀라서 A씨는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하고 그대로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고 했다.


인사이트대입 시험 결과는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자료 사진) / 연합뉴스


동생에게 위로의 편지를 꼭 쓰고 싶었던 A씨는 용기를 내어 대나무숲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A씨는 "수고했어, 정말 수고했어 진짜로 이 말 한마디 듣지 못해 울고 있는 네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찢어질 것 같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네가 1년 동안,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그 오랜 시간을 열심히 준비해 온 시험이란 걸 다 알아"라며 "동생아 엄마도 많이 속상해서 그랬을 거야"라고 위로했다.


인사이트A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험 결과가 좋지 못해 크게 실망했다(자료 사진) / Gettyimages


A씨는 끝으로 "조금은 우울한 기분 털어내고 원래의 너로 돌아왔으면 해"라며 "이왕 재수하기로 마음 먹은 거 그 전까지 신나게 놀다가 멋지게 일 년 보냈으면 해"라고 응원했다.


해당 게시글은 공개된 이후 좋아요 2만 1,000여건과 2,400여건의 댓글과 수백건의 공유를 기록하면서 수험생과 대학생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인사이트A씨는 동생이 다시 기운을 차리고 화이팅 하길 응원했다(자료 사진) / 연합뉴스


한 누리꾼은 "저도 고3 첫 수능 치고 수고했단 말 한 마디 못 들었어요. 되게 속상했는데 우는 것조차 숨어서였던 기억이..."라고 적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정말 멋진 누나인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에는 좋은 성과가 있길 응원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A씨가 서울대 대나무숲에 올린 글 '전문'이다.


"엄만 왜 수고했단 말 한마디도 안 해줘?"

"니가 수고하긴 뭘 해 시험을 그렇게 봐 놓고"

사랑하는 내 동생아

누난 어제 정말 놀랐다?

수능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채점을 한 너는

조용히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와 나한테 망했다고 했지

넌 워낙 밝은 애라 그런지 슬퍼 보이지 않았어

오히려 웃으면서 아 일 년 더 하지 뭐~ 하면서 너스레를 떨 정도였으니까

얼마 뒤에 엄마가 온 후로 둘은 거실에서 바로 얘기를 했고

넌 저 마지막 엄마의 말을 듣더니 한숨을 크게 내 쉬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더라

누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랑 너랑 싸우고 나면 너 기분을 풀어주려고 너 방에 들어갔어

수능도 끝났는데 치킨이나 먹으면서 같이 얘기하면 또 네 기분이 풀릴 줄 알았거든

우리 원래 그런 사이잖아 장난도 엄청 치고 웬만하면 화 안 내고 안 삐지고 서로 엄마랑 싸우고 나면 같이 얘기하면서 기분 풀고

그런데 내 착각이었어 내 생각이 많이 짧았더라고

문을 살짝 열었는데 동생아

너가 정말 많이 울고 있더라

그냥 우는 게 아니라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흐느끼고 있더라

키도 멀대같이 크고 덩치도 큰 너가....

그런 네 모습을 보고 아주 조용히 문을 닫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어

정말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

난 너가 우는 걸 어릴 때 이후로 처음 보거든

넌 그만큼 잘 안 우는 아이잖아 수능 망해도 일 년 더 하지 뭐 하면서 너스레 떨 수 있는 아이잖아

근데 그런 네가 오열하고 있더라

지금이라면 바로 엄마한테 가서 내가 화 냈을 것 같은데

그땐 나도 너무 슬퍼서 그냥 내 방에서 조용히 울었어

그런 너한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렇게 글이라도 남기려고 해

일단 동생아

수고했어, 정말 수고했어 진짜로

이 말 한마디 듣지 못해 울고 있는 네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찢어질 것 같더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래 그떄 얼른 너한테 가서 수고했다고 말을 해줬어야 했나 하고 후회도 들어

하지만 그땐 나도 정말 너무 놀랐고 슬퍼서 그러지 못했어 누나도 정말 미안해

너가 1년 동안,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니 초등학교 때 부터 그 오랜 시간을

열심히 준비해 온 시험이란 걸 다 알아 너 공부 잘하는 아이인 거 다 알잖아

다 아는데 왜 엄마는 모를까 하고 속상하지..

근데 동생아 엄마도 많이 속상해서 그랬을 거야

엄마도 너 수능 보러 간 날 밥 먹고 소화 안 돼서 체해서 병원까지 다녀오셨어

그만큼 너에 대한 기대가 컸고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커서 말실수 하신 걸 거야

그렇다고 해서 엄마를 옹호할 마음은 없어 이번엔 아무리 봐도 엄마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나중에 누나가 대신해서라도 엄마한테 잘 얘기해볼게

그러니까 동생아

조금은 우울한 기분 털어내고 원래의 너로 돌아왔으면 해

이왕 재수하기로 마음 먹은 거 그 전까지 신나게 놀다가 멋지게 일 년 보냈으면 해

재수도 안 해본 내가 어떻게 너의 마음을 이해하겠냐만은

죽어라 고생해서 수능 봤는데 수고했단 말 한 마디 못 듣고 있는

감당하지 못할 슬픔을 견디고 있는 너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정말 모르겠지만은

그래도 동생아 정말 수고했어 이 말 밖에 해줄 말이 없는 내가 너무 미안해

하지만 넌 충분히 고생했어 수고했어. 수도 없이 이 누나가 대신 해줄게

우리 이렇게 서로 오글거리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너 우는 모습을 보니까 누나 마음이 너무 약해진다

글 한 번 멋지게 써주고 싶었는데 공돌이 누나의 글쓰기 실력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 것 같아 미안해..ㅎ

그래도 진심은 느껴졌길 바랄게 그럴 거라고 믿고 있어도 되는 거겠지!

뭐라 끝내야 될지 모르겠네

사랑하는 내 동생아 정말 수고했어! 진짜로!!

이번 수능을 치루신 다른 모든 수험생 분들도

정말 정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시험장까지 데려다준 아빠께 '큰절' 올려 장학금 받은 수험생 아들이 한 말수능 당일 시험장까지 직접 데려다준 아빠에게 큰절을 올려 장안의 화제를 모은 고3 수험생이 있다.


이유리 기자 yuri@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