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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박주영 기자 =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전례 없는 성공적인 협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지난 1년은 일본이 아닌 정부와 싸워야 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28일 한국과 일본 양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를 한지 꼭 1년이 됐다. 그리고 이날 부산시 동구 주한 일본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하지만 부산 동구청 직원 30여 명이 현장에 나와 소녀상을 에워싼 시민을 떼어내더니 소녀상을 강제 철거해 갔다. 국민들이 모금을 통해 제작한 소녀상을 우리 정부가 '자진해서' 철거해 간 셈이다.
이후 시민들의 강력한 반발 속에 소녀상은 이틀 만에 설치 허가를 받고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이렇듯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와 먼저 싸워야 하는 상황에 어느덧 익숙해졌다.
철거되는 소녀상 / 연합뉴스
실제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보다 한발 더 일본의 입장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2015년 12월 28일 타결된 합의 문구에 소녀상 철거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소녀상에 대해 '일본대사관의 안녕과 위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면 된다'와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문구가 있다.
보통 외교에서 모호한 문구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해석하지만 우리 정부는 굳이 이 문구를 일본의입장에서 해석해 일본이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을 발빠르게 처리해주는 것이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소녀상이 수모를 겪은 그 시각, 서울의 주한 일본대사관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요집회가 열렸다.
1,263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들은 정부의 태도를 "잘못을 저지르고서 아니라고 우기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박근혜식 농단'의 전형"이라고 규정하며, 한국 정부가 재협상에 나설 때까지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 당사자의 합의 없는 위안부 합의를 재협상 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다시 협상해 달라고 해도 일본이 응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위안부 문제는 국가 간 협의를 거쳐서 결정된 것으로 연속성 있게 유지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렇게 할머니들은 일본이 아닌 한국 정부와 오늘도 힘겨운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다.
박주영 기자 juyoung@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