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외무상(외교부 장관)이 15년만에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리수용 북한 외무상은 오는 9월 중순께부터 시작되는 유엔총회에 맞춰 북한방문단을 이끌고 미국에 온다. 각국 대표 기조연설도 직접 한다.
북한 외무상의 유엔총회 방문은 1991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이후 단 2차례밖에 없었다. 이후 한두 차례 북한 외무상 등 최고위 당국자의 미국·유엔 방문이 추진됐으나 '돌발사고'로 무산됐다.
북한은 유엔 가입 이듬해인 1992년 당시 김영남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이어 9년만인 1999년 백남순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듬해인 2000년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맞춰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김 위원장 일행과 미국 항공사 아메리칸에어라인 사이에 보안검색 문제가 불거져 결국 미국 방문이 무산됐다. 이 일로 백남순 외무상의 방미마저 취소됐다.
이후 북한은 2007년까지 최수헌 외무성 부상(차관)이, 이후 2013년까지는 박길연 부상이 유엔총회에 나왔다.
이처럼 북한 외무상의 방미는 흔치 않은 일이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유엔 외교가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리수용 외무상이 방미 기간에 미국측과 공식·비공식 접촉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돌발사고로 김영남-백남순의 방미가 무산돼 북·미 관계가 경색됐던 2000년에도 김계관 부상이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 평화특사와 1주일간 만난 일이 있다. 사고만 없었다면 대화 상대는 김계관 부상에서 김영남 위원장이나 백남순 외무상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번 북한 외무상 미국 방문을 놓고는 전망이 확연히 갈린다.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가 미국을 찾았을 때 북·미 관계가 개선됐다는 점에서 낙관론이 나오지만 최근의 북한 문제를 감안하면 반대라는 전망도 있다.
1999년 백남순 외무상은 방미 기간에 각종 회견은 물론 미국외교협회(CFR)에서 연설까지 하며 "우리는 미국을 백년숙적으로 보려하지 않는다", "북·미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겠다"면서 적극적인 유화책을 폈다.
따라서 이번에도 외교책임자인 리수용 외무상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천명, 북·미, 남·북 관계 개선을 시도할 공산이 크고, 미국도 이에 맞춰 일정 수준 이상의 화답을 내놓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 핵·미사일 발사 현안 등에 대한 최근 북한의 태도와 국제사회의 반발을 고려하면 리수용 외무상의 방미는 '북한 이슈'를 더욱 악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북한 유엔대표부가 최근 이례적으로 유엔에서 수차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을 침략자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계 개선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겨냥해 '북한 정권 붕괴', '평양 침공' 등의 목적이라며 미국과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여기에 이번 유엔총회에서는 북한 인권문제가 공식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유엔이 작성한 북한 인권보고서는 북한내 반(反) 인권 관련자를 국제형사재판소에 세우자는 권고까지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입장에서는 배수진을 쳐야 할 형국이다. 북한 최고지도자를 국제법정에 세우자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 사령탑인 외무상이 인권·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전방위 방어전략을 직접 지휘하기 위해 유엔총회 현장에 나오는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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