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기념일에 경영진이 고객 현장으로...요금제·로밍 불편부터 손봐
고객만족도 3관왕, 상반기 휴대전화 가입자 22만명 순증
자체 AI 모델·데이터센터에 통신망과 고객 접점 더해 사업 확대
정재헌 SK텔레콤 최고경영자(CEO)는 회사가 가장 어려울 때 경영을 맡았다. 사이버 침해 사고 뒤 휴대전화 가입자가 줄었고, 27년간 지켰던 고객만족도 1위도 내준 뒤였다. 오래 쓴 고객에게 계속 SKT를 써달라고 말하려면, 회사부터 달라져야 했다.
오는 30일 정 CEO는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정 CEO의 지휘 아래, 올해 SKT는 국내 3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휴대전화 가입자가 순증으로 돌아섰고 실적도 회복됐다. 정 CEO는 통신사업을 추스르는 동안 AI 사업과 조직을 바꾸는 작업도 함께 진행했다.
경기도 포천시 관인노인대학을 찾아 노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정 대표 모습 / 사진제공=SK텔레콤
그는 이달 1일 뉴스룸 칼럼에 "고객의 믿음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절실히 배웠다"고 썼다. 고객 신뢰를 훼손한 이듬해 얻은 평가여서 더 뜻깊고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42주년 창립기념일, 경영진은 고객을 만나러 갔다
올해 SKT의 창립기념일은 평소와 달랐다. 정 CEO는 '고객 앞에 다시 서는 날'로 정하고 경영진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 회사의 마흔 두번째 생일 날, 축포보다는 경청에 나섰다. 고객 이야기를 다시 듣겠다고 움직인 것이다.
정 CEO가 지난 3월 27일 찾아간 곳은 경기 포천시 관인노인대학이었다. 어르신들은 전화와 문자 정도만 사용하는데 어렵고 불필요한 기능이 많다며, 좀 더 쉽게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박재경 학장은 "보이스피싱이 무서워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어르신들도 있다"고 전했다.
정 CEO는 고객들의 휴대전화를 살피고 디지털 안심 교육에 참여했다. 그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접근성이 더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안전한 서비스를 만들고 사용 방법도 쉽게 알릴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정재헌 SKT CEO / 뉴스1
다른 임원들도 고객센터와 대리점, 공항 로밍센터, 장애인 복지관 등을 방문했다. 고객센터에 간 임원들은 상담사 옆에 앉아 실제로 들어오는 문의를 함께 들었다. 대리점에서는 휴대전화를 사러 온 고객을 만나고 현장 직원들의 고충도 들었다.
SKT가 지난 9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 87개 시·군에서 고령층 고객 3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진행했다. 서비스 상담과 의견 청취 등을 포함한 현장 활동은 730회였다. 고객자문단 100명은 상품과 서비스 기획에도 참여했다.
고객들이 불편해하던 서비스도 손봤다. 5G와 LTE를 구분하던 요금제를 통합했고, 로밍은 같은 요금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쓸 수 있게 했다. 데이터를 다 쓴 뒤의 이용 속도도 높였다. T멤버십은 여러 혜택을 한곳에서 쉽게 찾아 쓸 수 있도록 바꿨다.
1위 되찾고 가입자 이탈 줄어...회복 나타난 고객 지표
고객들이 내린 평가는 달라졌다. SKT는 지난 4월 국가고객만족도(NCSI), 7월 한국서비스품질지수(KS-SQI), 9월 한국산업의 고객만족도(KCSI)에서 모두 이동통신 부문 1위에 올랐다. 지난해 놓쳤던 KCSI 1위도 되찾았다.
정재헌 SK텔레콤 CEO / 사진제공=SK텔레콤
특히 장기고객 혜택, 통화·데이터 품질, 요금제 만족도 등에서 평가가 좋아졌다. 고객을 만나 의견을 듣고, 서비스를 바꾸는 데 회사가 공을 들였던 부분들이다.
가입자 수에서도 회복이 확인된다. SKT의 2분기 IR 자료를 보면 휴대전화 가입자는 지난해 말 2175만명에서 올해 6월 말 2197만명으로 늘었다. 상반기 순증 인원은 22만명이다. 사고 이전 규모까지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말까지 줄던 가입자가 올해 들어 두 분기 연속 늘었다.
휴대전화 월평균 해지율은 지난해 2분기 1.6%에서 올해 2분기 0.8%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연결 영업이익은 67.3% 증가한 566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유심 교체 등 일시적 비용이 발생했던 데 따른 기저효과가 반영됐다. 올해 1분기와 비교해도 영업이익은 5.3% 늘었다.
다만 정 CEO는 고객만족도 1위를 신뢰 회복의 완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결과를 더 높은 기준으로 고객을 대하고 더 나은 서비스로 보답하라는 요청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통신에서 쌓은 경험으로 AI 사업 키운다
정 CEO가 AI 사업에서 활용하려는 것도 통신을 하면서 쌓아온 경험이다. 자체 AI 모델과 데이터센터에 통신망, 결제 체계, 고객 접점을 더해 사업을 키우겠다는 방향을 잡았다. 이달 8일 구성원 타운홀에서 발표한 'SKT 성장 기어 전략'에 담긴 내용이다.
사진제공=SK텔레콤
SKT는 지난 8월 정부의 '모두의 AI' 사업 수행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자체 모델 'A.X K2' 등을 활용한 AI 비서 계획을 내놨다. 정보를 찾아주는 데서 나아가 전화 걸기와 예약 등 이용자가 부탁한 일까지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넓히기로 했다. SKT는 앱뿐 아니라 전화와 문자로도 필요한 정보를 묻고 안내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폰 앱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을 고려한 방식이다. 통신망과 음성 인식·합성 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의 장점을 이 사업에 활용한다.
AI 데이터센터 사업에서는 이미 매출이 늘고 있다. 올해 2분기 매출은 136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7월에는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사업개발을 전담할 SK하이퍼를 설립했다. 정 CEO는 AI를 통신 품질과 보안 개선에 활용하는 한편, 통신망을 통해 AI 서비스를 고객과 산업 현장으로 넓혀가겠다고 밝혔다.
AI가 고객의 일을 대신 처리할수록 개인정보와 이용 권한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해진다. SKT는 지난 26일 처음 발간한 'AI 거버넌스 리포트'에서 서비스 기획 단계부터 개인정보 보호를 설계하고, AI의 개발·운영 과정에서 위험을 점검하는 관리체계를 공개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AI를 도입하면서 업무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정 CEO는 지난 6월 AI 에이전트에 사번과 역할·권한을 부여하고, 구성원이 AI와 함께 기획·개발·디자인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AX 혁신 2.0' 계획을 제시했다.
기존 업무를 AI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AX 샌드박스'도 도입했다. 구성원이 자신의 업무 방식을 AI에 학습시켜 일을 맡기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회사는 사내 공모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갖춘 구성원을 핵심 사업에 배치할 계획도 밝혔다.
사진제공=SK텔레콤
정 CEO는 고객에게 먼저 다가갔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다시 보내주신 믿음이 변화를 만드는 힘이 됐다"고 했다. 이어 "고객의 목소리를 변화로, 그 변화를 더 단단한 신뢰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