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순한 걸로 주세요"
편의점에서 타르 함량이 0.1mg인 담배를 고르며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았던 흡연자들. 숫자만 보면 왠지 덜 해로울 것 같다. 6mg이나 8mg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 숫자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에서 판매되는 담배의 유해성분 검사 결과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GettyimagesKorea
실제 흡연자의 습관을 더 많이 반영한 방식으로 검사한 결과, 저타르 담배에서도 타르 측정량이 기존 담뱃갑에 표시된 수치보다 높게 나타났다.
같은 담배인데도 측정 방식에 따라 숫자가 달라진 것이다.
범인은 '필터 구멍'이었다
일부 저타르 담배의 필터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공기구멍이 뚫려 있다. 외부 공기를 유입시켜 담배 연기를 희석하고, 기계로 측정했을 때 타르 수치가 낮게 나오도록 하는 구조다.
기존 담뱃갑의 타르 함량은 필터의 공기구멍을 막지 않은 상태에서 기계로 연기를 빨아들여 측정한다. 이 과정에서 외부 공기가 섞이면서 타르 측정량이 실제 흡연 환경에서보다 낮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흡연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담배를 피울 때 입술이나 손가락으로 공기구멍을 막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연기를 얼마나 깊게 들이마시는지에 따라서도 흡입량이 달라진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GettyimagesKorea
실제로 2016년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 저타르 담배 5종을 대상으로 흡연 습관을 반영해 실험한 결과, 타르 함량이 0.1mg으로 표시된 제품에서 최대 9.5mg의 타르가 측정됐다.
표시된 수치의 무려 95배다. 담뱃갑에 적힌 숫자와 실제 흡연 습관을 반영한 측정값 사이에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8년 조사에 따르면 저타르 담배를 피워 본 흡연자의 62.3%는 저타르 담배가 일반담배보다 덜 해롭다고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르는 '성분'이 아니라 '총 무게'다
타르라고 하면 도로 포장에 사용하는 검고 끈적끈적한 아스팔트 타르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담배에서 말하는 타르는 다른 개념이다.
담배 연기 속 작은 입자들을 모은 뒤 니코틴과 수분을 제외하고 남은 물질의 총 무게를 뜻한다.
쉽게 말해 장바구니의 무게만 재는 것과 비슷하다. 장바구니가 3kg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그 안에 채소가 들어 있는지 과자가 들어 있는지는 무게만으로 알 수 없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GettyimagesKorea
타르도 마찬가지다. 여러 화학물질이 섞인 입자상물질의 총 무게를 보여줄 뿐, 어떤 유해물질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타르는 개별 유해성분을 분석하기 어려웠던 시절부터 사용해 온 지표다.
여러 물질의 총 무게를 나타내는 수치인 만큼, 타르 함량만으로 담배의 유해성이나 건강상 위험도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주목한 타르 수치의 한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일반담배의 타르 함량을 담뱃갑에 표시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궐련형 전자담배에 타르 함량 표시를 의무화한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담뱃갑에 표시된 타르·니코틴·일산화탄소 수치가 소비자에게 제품의 유해성에 대한 오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GettyimagesKorea
이번 식약처 검사에서는 타르뿐 아니라 벤젠, 벤조[a]피렌, 포름알데히드 등 주요 발암물질 11종의 측정 결과도 공개됐다.
유해성분이 검출됐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성분이 얼마나 측정됐는지까지 확인해야 검사 결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타르'만 보면 놓친다... 주요 유해성분 측정량 차이 97%
식약처가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비교한 결과, 비교 대상 궐련형 전자담배에서는 1군 주요 발암물질 11종 가운데 7종이 정량한계 미만으로 나타났다. 정량한계 미만은 극소량 검출되어 측정하기 불가능한 수준을 뜻한다.
측정된 성분은 NNN·NNK·포름알데히드·벤조[a]피렌 등 4종이었다. 성분별 최대 측정량은 일반담배보다 약 90~95% 낮았다.
주요 발암물질 11종의 성분별 측정량을 살펴보면 전자담배는 일반담배보다 최대 측정량 평균 약 97% 낮게 나타났다. 니코틴과 타르를 제외한 전체 유해성분에서도 최대 측정량 평균 차이율이 약 95%로 낮았다.
사진=식품의약품안전처·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이는 타르라는 하나의 숫자만 비교해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차이다.
이번 검사 결과는 타르 함량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개별 유해성분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제는 '타르 몇 mg'이라는 하나의 숫자를 넘어, 어떤 유해성분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