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했습니다. 딱 한 글자만 빼고요."
김영춘 식품의약품안전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중조단) 주무관이 가짜 건강기능식품 추적 당시를 설명하며 한 말이다.
10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김 주무관이 정품과 거의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 제품에서 찾아낸 단서는 의외로 작았다. 제품 포장지의 건강기능식품 인증마크에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건강기능식풍'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식약처
김 주무관은 이를 만든 사람이 한글을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정품의 글자를 그대로 재현하려다 마지막 한 글자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흔적이었다.
이 작은 오타 하나는 중조단이 가짜 제품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정품과 가짜 제품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된 한 글자의 차이는 중국 제조업자와 국내 유통책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추적하는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이 수사가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중국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 건강기능식품 등이 유통되고 있다는 정보는 있었지만, 실제로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어떤 경로로 국내에 들어오는지, 얼마나 많은 위조 상품이 유통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여름날, 지식재산처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두 기관의 공조 수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식약처와 지식재산처 특사경은 중국 제조업자와 국내 유통책 사이의 연결고리를 끈질기게 추적했고, 충북 청주에 있는 A씨의 물류창고를 특정했다. 하지만 의심만으로는 창고에 들어갈 수 없었다.
모든 집행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이뤄져야 했기 때문이다. 김 주무관은 확보한 자료를 보완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영장을 발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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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1일은 결전의 날이었다. 이날 수사팀은 약 300평 규모의 물류창고에 들어섰다.
창고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제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정식 수입 절차를 거쳤다면 부착돼 있어야 할 한글 표시가 없는 제품도 다수 발견됐다.
이들이 확인한 것은 가짜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뿐이 아니었다. 의약외품과 무신고 수입식품, 가짜 정수기 필터와 전자제품, 신발과 골프용품까지 한곳에 모여 있었다. 압수해야 할 물량이 워낙 많아 5t 트럭까지 동원됐다.
수사 결과 A씨는 중국 선전의 제조업자와 공모해 재작년 10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등 위조 상품 61종, 약 8만3000개를 국내 온라인 오픈마켓을 통해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액으로는 약 45억원 상당이었다. A씨는 중국 제조업자가 국제특송화물이나 해외 택배 등을 이용해 보낸 위조 상품을 자신이 임대한 물류창고에 보관했다가, 온라인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전국 구매자에게 배송하는 방식으로 유통한 것으로 조사됐다.
물류창고에서 적발된 제품을 정품과 비교하자 차이는 더욱 분명했다. 포장지의 재질과 인쇄 내용은 물론 용기의 형태와 크기, 제품의 제형과 색감 등이 정품과 달랐다.
수사팀은 이를 중국에서 제조된 가짜 상품으로 확인하고 전량 압수했다. A씨가 단순히 물류만 맡은 것도 아니었다. 가짜 브리타 정수기 필터의 경우 기존에 표시된 '원산지 중국'을 제거하고 '원산지 독일'로 바꾸는 등 위조 상품의 판매에 직접 관여한 정황도 확인됐다.
이번 수사에서 화장품법과 건강기능식품법, 상표법 위반으로 적발된 중국산 위조 상품은 모두 9만7000여 개로, 시가 약 54억원 상당이었다. 국내 브랜드 화장품 28종, 의약외품 4종, 건강기능식품 3종, 무신고 수입식품 44종 등이 포함됐다.
상표법 위반 제품도 있었다. 생활·가전 제품 4종을 비롯해 신발 2종, 골프용품 2종 등 4000여 개가 확인됐다. 시가로는 약 4억원 상당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이 다룬 제품이 가품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수사팀은 A씨가 사용하던 업무용 컴퓨터 등을 확보해 디지털 포렌식에 들어갔다.
A씨는 자신이 판매한 제품이 가짜인지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복원된 메신저 대화에서는 이와 다른 정황이 확인됐다. 수사 결과 브로커 A씨는 검찰에 송치됐다.
김 주무관은 "화장품 제조사와 이를 판매하는 책임 있는 유통업체, 지식재산처 상표특별사법경찰과의 공조가 중요했다"고 밝혔다.
식약처 대변인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품 판매자 적발을 넘어 제조와 유통 과정의 연결고리까지 추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식약처 대변인은 "식약처와 지식재산처의 시선은 더 멀리 향하고 있다"며 "가품을 판매한 사람을 적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가품을 만들고 유통한 연결고리를 끝까지 추적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대한민국의 신뢰를 갉아먹는 '엉터리 가품'이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식약처와 지식재산처 특사경의 추적은 멈추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