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19일(수)

"이사 갈 때 벽지 새로 도배하세요" 집주인 요구, 정당할까

전월세 계약이 만료돼 이사를 준비하는 세입자들에게 집주인이 벽지와 장판 교체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정상적인 생활로 인한 변색이나 마모까지 세입자가 부담할 의무는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부동산 투자·컨설팅 전문기업 밸류업이노베이션에 따르면 민법은 임차인에게 원상회복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임대차 계약이 끝나면 빌린 집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입주 당시와 완전히 똑같은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관건은 정상적인 사용 중 발생한 흔적인지, 임차인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훼손인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Landlord_asks_tenant_redecorate_…_202608191232.jpeg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햇빛에 벽지가 바래거나 가구로 인해 장판에 눌린 자국이 생긴 경우, 일상생활로 바닥재가 닳은 경우 등은 시간 경과에 따른 자연스러운 손상으로 본다. 이런 '통상손모'에 대해서는 별도 특약이 없으면 세입자가 원상회복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법원도 같은 입장이다. 임차인은 집을 쓰는 대가로 임대료를 내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용 과정의 마모나 노후화를 세입자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세입자의 부주의나 고의로 집을 손상시킨 경우는 다르다.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려 바닥이 깨지거나 반려동물이 벽지와 문을 심하게 훼손한 경우처럼 통상적인 사용 범위를 벗어난 손상이라면 세입자에게 원상회복이나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계약서의 원상회복 특약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단순히 '퇴거 시 원상회복한다'는 문구만으로 도배와 장판 교체 비용을 세입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서울중앙지법은 계약서에 '퇴실 시 원래의 도면 상태로 원상회복한다'는 특약이 있었던 사건에서, 이 문구만으로 통상손모까지 임차인이 보수하기로 약정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밸류업이노베이션이 소개했다.


image.png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gettyimagesBank


하지만 계약 단계에서 '퇴거 시 도배·장판을 임차인 비용으로 교체한다'처럼 대상과 부담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했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원상회복 특약 자체보다 무엇을 어디까지 세입자가 부담하기로 했는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상가 임차인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본인이 직접 설치하지 않은 시설도 계약 내용에 따라 철거 책임을 질 수 있다.


대법원은 이전 임차인이 설치한 커피전문점 시설을 넘겨받아 사용한 임차인에게 계약 종료 후 해당 시설 철거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계약서에 원상회복 의무가 명시됐고 현 임차인이 이전 임차인으로부터 영업을 넘겨받았다는 점이 고려됐다.


기존 상가를 권리금 등을 주고 넘겨받을 때는 이전 임차인이 설치한 인테리어나 시설물을 누가 철거할 것인지 계약 단계에서 확인해야 한다. 자신이 설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원상회복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전대차의 경우 책임관계는 더욱 복잡하다. 임차인이 제3자에게 집이나 상가를 다시 빌려준 경우에는 누가 시설을 훼손했는지뿐 아니라 임차·전차 기간과 각 계약서의 원상회복 특약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분쟁을 막으려면 입주할 때부터 집 상태를 기록해 두는 게 좋다. 벽지와 장판, 싱크대, 창틀 등 주요 시설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면 퇴거 때 기존 손상인지 거주 중 발생한 훼손인지 가리는 근거가 된다. 계약할 때는 원상회복 특약의 범위도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