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의 삶을 버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친 기업인이 있다.
바로 매해 광복절마다 독립을 위해 애쓴 기업인들 중에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유한양행 창업주다.
내일(15일) 광복 81주년을 맞아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기업인으로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것을 넘어, 미국 정보기관의 비밀요원 '암호명 A'로 직접 항일투쟁에 나섰던 독립운동가였다.
사진=유한양행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난 유일한 박사는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09년에는 독립운동가 박용만 선생이 미주지역에서 최초로 설립한 '한인소년병학교'에 입교했다.
오전에는 농장에서 학비를 벌고, 오후에는 공부와 군사훈련을 받으며 민족의식과 자주독립 사상을 키웠다. 이때 형성된 애국심은 후에 그가 펼친 독립운동과 기업경영의 근간이 되었다.
1919년 미시간 대학교에 재학중이던 24살의 유일한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역사적인 한인자유대회에서 한인대표로 결의문을 작성, 낭독하기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유 박사는 1922년 '라초이 식품회사'를 설립해 숙주나물 판매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미국에서 안정적인 사업가의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우연히 간도를 방문하면서 일제 강점기에 고통받는 동포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 성공한 사업가로서의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회사를 매각해 모은 자금으로 1926년 귀국하여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설립된 유한양행은 단순한 이윤 추구가 아닌, 민족의 건강과 독립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것이 목표였다. 1933년에는 자체 개발 1호 의약품인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을 출시하며 국민 건강 증진에 이바지했다.
사진=유한양행
1938년 유일한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가로서 활동을 전개했다. 1941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해외한족대회 집행부에 가담했고, 이후 재미 독립운동가들과 활발한 애국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1942년에는 LA에서 재미 한인들로 구성된 무장독립운동단체 '맹호군' 창설을 주도했으며 1945년에는 버지니아주에서 12개국 대표 160명이 모이는 IPR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해 전후 일본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 전략사무국(OSS)에서 한국 담당 고문으로 활동 중이었던 유일한은 1945년 일본을 상대로 한 비밀첩보작전인 '냅코(NAPKO) 프로젝트'의 공작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이 작전은 한국 임시정부 광복군의 독수리 작전과 합동 수행으로 한국인을 국내로 침투시켜 정보 수집, 폭파, 무장 유격활동을 전개하는 임무였다.
이 작전에는 19명의 한국인 정예요원이 선발되었는데, 그중 '1조 조장'이자 첫 번째 요원인 '암호명 A'가 바로 유일한 박사였다. 당시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된 군사 훈련과 공수훈련을 견디며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1945년 8. 15 광복으로 냅코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지만,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서약을 몸소 지킨 그의 숭고한 뜻과 희생정신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유한양행 / 사진 = 인사이트
한편, 유한양행은 1936년 개인기업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국내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했다. 이는 기업이 자사의 주식을 종업원이 매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오늘날의 우리사주제나 스톡옵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1962년에는 제약업계 최초로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기도 했다.
유 박사는 대한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며 산업 발전에 기여했고, 유한공고를 설립하여 기술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개인 소유 주식을 각종 장학금으로 출연하는 등 자본의 사회 환원에도 앞장섰다.
1971년 3월 11일, 76세로 타계한 유 박사는 마지막까지 나라와 사회를 생각했다.
그의 유언장이 공개되자 많은 이들이 놀랐다. 손녀의 장학금을 제외한 모든 유한양행 소유주식을 공익법인인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현 유한재단)'에 남긴 것이다. 이는 유한양행의 기업활동이 영속적으로 우리 사회의 공익을 위해 쓰이도록 하면서, 기업과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사회에 바친 위대한 결단이었다.
사진=유한양행
정부는 유 박사의 공훈을 기려 1955년 건국훈장과 독립훈장을 수여했으며, 1995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996년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유한양행은 창업주의 정신을 이어받아 헌혈, 연탄 나눔, 학술 연구 지원, 국가유공자 지원 등 사회공헌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광복 81주년을 맞아, 유일한 박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려야 하는 것은 값없이 독립된 국가의 주권을 누리는 후대 국민들의 최소한의 책무이다. 특히 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로서 평생의 삶을 조국을 위해 바친 그의 숭고한 정신은 앞으로도 오래 기억하고 또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