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국인이 해외에서도 원화 계좌를 만들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역외원화결제기관' 제도를 도입한다. 뉴욕이나 런던에 있는 은행에서도 원화 예금, 대출, 송금이 가능해지며 한국은행에는 24시간 역외 결제망이 구축된다.
19일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동안 외국인이 원화를 송금하거나 결제하려면 국내 외국환은행에 직접 계좌를 개설해야 했다. 해외 은행에는 원화 계좌를 만들 수 없어 원화를 미리 보관하거나 다른 외국인에게 송금하는 데 제약이 컸다. 한국 주식이나 국채에 투자하려는 외국인도 해외 현지 낮 시간에는 원화 환전이 어려웠고, 거래 때마다 당국에 사전 신고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뉴욕 월가 / GettyimagesKorea
앞으로 도입될 역외원화결제기관은 일정 요건을 갖춰 재경부에 등록한 해외 금융기관으로, 외국인 고객의 원화 예금과 대출, 송금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특정 기관을 지정하는 방식이 아닌 요건을 충족하면 누구나 등록할 수 있는 등록제로 운영된다.
제도가 시행되면 미국 자산운용사는 뉴욕의 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해 한국 국채 매입 자금을 보관할 수 있고, 외국 기업이 자국 은행에 보유한 원화로 한국 업체에 물품 대금을 지급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특히 역외원화결제기관 계좌를 이용한 외국인 간 원화 자본거래는 사전신고 의무가 사라지며, 국내 부동산 거래를 제외하고는 실시간 송금과 거래가 가능해진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관계자가 원화 5만원권 지폐를 정리하고 있다. / 뉴스1
한국은행은 해외에서 발생하는 원화 거래를 최종 처리할 '역외원화결제망'을 신설한다. 역외원화결제기관은 국내 은행에 기관 명의의 원화 통합계좌를 만들고, 외국인 고객의 해외 원화 송금은 이 계좌를 거쳐 한국은행 결제망에서 최종 마무리된다. 이 결제망은 오는 9월 시범 운영을 거쳐 2027년 1월 정식 가동될 예정이다.
정부는 지난 6일부터 외환시장을 24시간 운영해 해외 투자자가 현지 시간으로 언제든 원화를 환전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주말을 제외하고 월요일 오전 6시부터 토요일 오전 6시까지 중단 없이 거래가 이뤄진다.
정부는 여기에 역외원화결제기관과 결제망을 구축하여, 환전한 원화를 해외 계좌에 보관하고 한국 주식·국채 투자에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야간에 결제용 원화가 부족할 경우 해외 금융기관이 국내 은행에서 원화를 일시적으로 빌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된다.
또한, 매매기준율 산정 방식을 국내 시장 전체 거래를 가중평균하는 방식에서 국제 기준에 맞춰 특정 시간대 거래를 추출해 평균하는 방식으로 2027년 1월부터 변경한다. 야간 자동거래를 위한 전자거래 가이드라인은 올 8월 마련되며, 해외 투자자들이 자산 평가에 사용하는 글로벌 벤치마크 환율에 원화를 편입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외국인의 원화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규제 완화도 병행된다. 외국인이 보유한 국채와 통화안정증권을 해외에서 담보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단기 원화 보유액의 단기 금융상품 투자도 허용된다. 외국환거래법령상 자본거래 사전신고 기준 금액을 2배 이상 상향하고, 외국계 금융기관의 원화 차입 규제도 대폭 완화할 예정이다.
또한, 국내 외국환은행이 비거주자의 자산을 관리하는 '커스터디업'을 제도화하여 2027년 중 시행하고, 블록체인 기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디지털 국경 간 결제 프로젝트 '아고라' 참여 등 디지털 자산 인프라 구축에도 나선다.
무역금융 분야에서는 한중 통화스와프 등을 활용한 원화 결제 방식을 타 국가로 확산하고, 방산·원전 등 해외 구매계약에서 원화 결제 시 수출금융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 여력을 늘리고 통화스와프를 강화하는 등 원화 국제화에 따른 환율 변동성 위험에 대비한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하기로 했다.
이형렬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17일 사전브리핑에서 "그동안 외환 정책이 외환위기를 예방하는 데 전제를 뒀다면, 원화 국제화는 국제화로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을 모두 누리겠다는 정책 전환을 의미한다"며 "1999년 외국환거래법 제정 이후 가장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로드맵을 통해 원화를 달러처럼 해외에서도 자유롭게 바꿔 쓸 수 있는 '자유교환통화'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