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첫 월드컵 16강 신화, 그 중심에 '한국이 놓친 감독'이 있었다
29일(한국시간) 미국 LA 스타디움. 캐나다 축구대표팀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1-0으로 제압하며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환희에 찬 캐나다 벤치와 선수들 사이에서 제시 마치(Jesse Marsch) 감독이 선수들을 끌어안았다.
이 장면을 본 한국 축구팬들의 가슴엔 깊은 아쉬움이 스며들었다. 그는 불과 2년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를 간절히 원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2026년 6월 28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잉글우드의 로스앤젤레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FIFA 2026 월드컵 32강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캐나다의 경기에서 캐나다 대표팀의 감독 제시 마치가 팀의 승리와 16강 진출이 확정된 후, 선수들과 스크럼을 짜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GettyimagesKorea
"한국행을 원했던" 마치 감독의 진심
지난 2024년 9월 박주호 전 대한축구협회(KFA)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당시 상황을 상세히 증언했다. 2024년 봄 감독 선임 과정에서 마치 감독은 면접을 통해 "다른 제안도 많지만 나는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는 것이다.
박 전 위원에 따르면 마치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이끌기 위해 연봉과 세금 문제 등 조건적인 부분에서 대폭 양보 의사를 내비쳤다. 한국 축구의 이른바 '황금세대(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등)'를 지휘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만큼 강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력강화위원회의 대응은 충격적이었다. 박 전 위원은 "마치 감독의 이름을 처음 꺼냈을 때 위원회 내부에서 그의 존재나 커리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위원들이 많았다"고 폭로했다. 세계 축구계에서 주목받는 감독 후보에 대한 기본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회의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박주호 전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9.24/뉴스1
또한 축구협회는 이후 공식 설명문을 통해 "에이전트 측과 소득세율 등 세금 문제 조율이 지연되다가 최종 결렬되었다"고 주장했으나, 감독과 직접 교감했던 박주호 위원은 마치 감독의 진심이 '돈' 때문에 꺾인 것이 아니라 협회 행정의 미숙함과 지연 때문에 무산된 것임을 국회와 자신의 유튜브 채널(캡틴 파추호)을 통해 일관되게 증언한 바 있다.
캐나다에서 증명한 마치의 진가
한국행이 무산된 마치 감독은 캐나다 대표팀을 맡았다. 그는 부임 2개월 만인 코파 아메리카 2024에서 캐나다를 사상 첫 4강으로 이끌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조직적인 전술과 치밀한 경기 운영으로 캐나다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16강 진출을 만들어냈다.
남아공전 승리 직후 마치 감독은 잔디 위에서 선수들을 모아놓고 "너희는 캐나다의 영웅이다. 감독으로서 너희에 대한 책임감이 매일 나를 움직인다"는 연설을 남겼다. 지도자로서 그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보여준 순간이었다.
제시 마치(Jesse Marsch) 축구감독 / GettyimagesKorea
극명하게 갈린 한국과 캐나다의 운명
대한축구협회는 명확한 기준 없이 논란 속에서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한국 대표팀은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조기 탈락했고, 홍 감독은 자진 사퇴했다. 기자회견에서의 태도 역시 거센 비판을 받았으며, 축구협회 수뇌부 전면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축구계와 팬들 사이에서 쏟아지고 있다.
준비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걷어찬 대한축구협회의 실패는, 캐나다의 환호와 한국의 탄식이라는 극명한 대조로 돌아왔다. 인맥과 정실 중심의 낡은 시스템이 빚어낸 참극이 현실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