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중증 자폐 아들을 홀로 키워온 한 아버지가 간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죽음보다 아들의 내일을 먼저 생각했다. 의사가 말한 평균 기대여명을 넘긴 채 버티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들이 살아갈 길을 찾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 전경철 씨는 아들을 '피터팬'이라 부른다. 몸은 성인이 됐지만 사회성 연령은 2세에 머물러 있는 아이다.
세상의 잣대로는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언제나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아들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보통 아이들은 몇 년만 보여주고 사라지는 순수함과 기다림을 20년 넘게 간직한 채 아버지 곁에 머물러 있는 아들이다.
사진 제공 = 이야기장수
전 씨는 서울 시장통 한구석 '귀곡산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나홀로 아빠로 아들을 키워왔다. 남들의 시선이 거의 닿지 않는 그곳에서 정성껏 아들을 돌보던 그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가 펴낸 책 '안녕, 피터팬'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남기는 절박한 기록이다. 1부 '아빠의 날들'에서는 가상의 화자 '꼭두'를 통해 자신의 지난 삶을 담담하게 돌아본다. 후회와 그리움, 사랑과 감사가 교차하는 이야기 속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 깊숙이 배어 있다.
2부 '아들의 날들'은 중증 자폐인 아들과 함께한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담았다. 전 씨는 수천수만 번의 절망 끝에 간신히 아들이 머물 곳을 찾아냈다. 하지만 곧 어떤 사유로 그 희망마저 산산조각 났고,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한 아버지는 절규했다.
페스탈로치와 마더 테레사 같은 누군가에게 기댔다가, 기대했다가 다시 또다시 거부당하고 배제당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절망조차 사치다. 전 씨는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아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상상하며, 아들이 머물 공간과 사람들 그리고 미래를 향한 간절한 바람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다.
'안녕, 피터팬'은 단순한 투병기가 아니다. 죽음을 앞둔 한 아버지가 이 세상에 남기는 처절한 유서이자, 장애인과 가족의 삶을 외면해온 우리 사회를 향한 묵직한 질문이다. 동시에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전 씨는 이제 막연히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행동을 선택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과 같은 장애인 가족들이 더는 홀로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꿈을 제안한다. 그 꿈의 이름은 바로 '피터팬재단'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아들만 살려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온 세상의 피터팬 딸, 아들을 살려달라고 목소리를 낸다.
'피터팬재단'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장애인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다. 전 씨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루어내고 싶은 꿈은 바로 '네버랜드'의 첫 삽을 뜨는 것이다.
부모가 없어도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을, 가족이 사라진다고 해도 장애인 딸 아들의 삶은 사라지지 않는 세상, 중증장애인도 지역사회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전경철 씨는 말한다. "다시는 이 땅에, 피터팬이라는 이유로 세상 밖으로 내몰리는 아이가 없어야 한다. 더는 길이 보이지 않아, 자식과 자신을 포기하는 부모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의 꿈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다. 오늘도 수많은 장애인 가족들이 마주하는 현실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중증 자폐스펙트럼장애인을 위한 24시간 돌봄 공동체마을 '피터팬네버랜드'의 설립과 완성, 과연 그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이토록 간절한 마지막 소원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 인세 수익금 전액은 '피터팬재단'의 발족과 운영을 위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