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 K팝 아티스트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식이 생겼다. 음악, 퍼포먼스, 콘셉트만큼이나 중요한 것, 바로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캐릭터'다.
과거 K팝 캐릭터가 앨범 활동을 보조하는 마스코트나 팬덤 굿즈의 일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캐릭터는 아티스트의 성격과 세계관, 팬들이 사랑하는 포인트를 담아낸 하나의 독립적인 지식재산권(IP)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멤버를 닮은 귀여운 캐릭터"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비되고 사랑받는 또 하나의 브랜드가 된 셈이다.
이렇게 아티스트와 캐릭터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핵심 배경에는 '팬덤 경험의 확장'과 '진입 장벽 완화'를 꼽을 수 있다. 아티스트가 앨범을 내지 않는 비활동기에도 팬들은 캐릭터를 통해 일상 속에서 아티스트를 떠올리고, 즐기고, 소장하며 교감할 수 있다. 스마트폰 케이스, 키링, 인형, 파우치처럼 생활 가까이에 스며드는 아이템은 팬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애정 표현의 수단이 된다.
동시에 캐릭터는 코어 팬덤 바깥의 대중에게도 부드러운 접점을 만든다. 귀여운 외형과 완성도 높은 디자인은 아티스트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먼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캐릭터 귀엽다"는 마음이 "어느 그룹 캐릭터지?"라는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그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아티스트와 음악으로 향하는 식이다. 캐릭터가 팬덤의 문턱을 낮추는 친근한 안내자가 되는 것이다.
2세대 지드래곤부터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 5세대 NCT WISH까지...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K팝 캐릭터
(좌) 케이팝스퀘어 홍대에 오픈한 '마이티즈(MIGHTEEZ)'의 두 번째 팝업, (우) MMMM Baby Room 팝업 제품 / IPX(구 라인프렌즈)
K팝 캐릭터 IP 비즈니스의 흐름을 이끄는 대표 주자 중 하나로는 IPX(구 라인프렌즈)를 꼽을 수 있다. IPX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직접 제작 과정에 참여한 BT21을 통해 글로벌 인기 캐릭터 IP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IPX의 캐릭터 IP 전략은 멤버 외형을 그대로 반영하는 방식보다 아티스트의 스토리와 세계관을 캐릭터 설정으로 풀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팬덤 안에서는 아티스트와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팬덤 밖에서는 캐릭터 자체의 디자인과 서사로 접근성을 넓히는 방식이다.
그 첫 번째 핵심은 '아티스트 DNA의 이식'이다. IPX는 아티스트가 직접 기획에 참여하도록 해 캐릭터에 성격, 취향, 세계관을 촘촘히 녹여낸다. 팬들은 그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말투, 분위기, 관계성, 상징을 발견한다. 캐릭터는 팬들에게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또 다른 얼굴'이 된다.
두 번째는 팬덤 문화를 일상으로 가져오는 확장력이다. 팬덤 안에서는 너무나 소중하지만 바깥에서는 다소 드러내기 조심스러울 수 있는 애정 표현을, 캐릭터는 훨씬 자연스럽고 세련된 방식으로 가능하게 한다. 이른바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문화와 맞닿은 일상 아이템은 팬들에게는 은근한 소속감을, 대중에게는 부담 없는 소비 경험을 제공한다.
세 번째는 글로벌 팬덤 소비 문화에 대한 이해다. IPX는 10년 이상 글로벌 스토어를 운영하며 쌓은 현지 소비자 트렌드와 팬덤 문화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 맞춘 제품을 선보여왔다. 특히 응원봉 꾸미기, 포토카드 보관, 키링 수집 등 K팝 팬덤 안에서 익숙한 소비 방식을 제품 기획에 반영하며 팬들의 일상적인 취향과 연결점을 만들어왔다.
NCT WISH wishnini house POP-UP’이 진행된 케이팝스퀘어 홍대점 / IPX(구 라인프렌즈)
디자인과 콘텐츠 제작 역량도 중요한 요소다. IPX는 여러 캐릭터 IP 제품을 선보이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캐릭터와 제품 디자인에 반영해왔다. 캐릭터 외형은 물론 패키지와 공간 연출까지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캐릭터 IP가 장기적으로 소비되기 위해서는 귀여운 외형뿐 아니라 세계관, 디자인 완성도, 제품 확장성 등이 함께 요구되는 분위기다.
이 같은 역량은 다양한 K팝 아티스트와의 협업 사례로도 확인된다. IPX는 방탄소년단(BTS), 트레저, NCT DREAM, 에이티즈(ATEEZ) 등 3·4세대 대표 그룹들과 협업하며 K팝 캐릭터 IP의 가능성을 넓혀왔다. 최근에는 그 스펙트럼을 2세대 아이콘부터 버추얼 아이돌, 5세대 신예 그룹까지 확장하며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2세대 K팝 아이콘 지드래곤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담은 공식 캐릭터 'ZO&FRIENDS(조앤프렌즈)'를 선보였다. 힙하면서도 아티스틱한 감성이 돋보이는 ZO&FRIENDS는 지드래곤 특유의 자유분방한 미감과 캐릭터 IP의 대중성을 동시에 살리며 팬덤과 일반 소비자 모두에게 호응을 얻었다.
올해 2월에는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PLAVE)의 반려 픽셀 뭉치 'MMMM(므메미무)'을 '베이비' 콘셉트로 재해석한 단독 팝업을 열었다. 실존 아티스트를 넘어 버추얼 아티스트 영역에서도 캐릭터 IP가 어떻게 팬덤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디지털 세계관을 가진 아티스트와 캐릭터 IP의 결합은 팬들에게 더욱 입체적인 몰입감을 선사했다.
NCT WISH wishnini house POP-UP’이 진행된 케이팝스퀘어 홍대점 / IPX(라인프렌즈)
최근에는 5세대 대세 그룹 NCT WISH와 손잡고, NCT WISH의 공식 캐릭터 '위시돌(Wish Doll)'에 IPX의 인기 IP 'minini(미니니)'를 결합한 캐릭터 'wishnini(위시니니)'를 공개했다.
IPX는 지난 5월 29일부터 6월 7일까지 케이팝스퀘어 홍대에서 'NCT WISH wishnini house POP-UP'을 운영하기도 했다. 팝업은 별, 날개, Y2K 감성을 중심으로 한 'WISH CORE' 세계관을 공간 안팎에 녹여내며 팬들의 발길을 모았다.
현장에서는 멤버들의 개성이 담긴 인형, 키링, 이모지 배지 등 다양한 제품이 선보여졌다. NCT WISH의 밝고 몽글몽글한 에너지와 IPX 특유의 캐릭터 문법이 만나, 팬들에게는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즐거움을, 캐릭터를 처음 접하는 대중에게는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는 접점을 만들었다.
아티스트 세계관을 충실히 담아내면서도 하나의 캐릭터 브랜드로 소비될 수 있도록 재해석한 점이 눈에 띄었다.
팬덤과 컬렉터를 동시에 잡은 K팝 캐릭터
팝마트의 에스파 플러피 클럽 시리즈 / 팝마트
K팝 캐릭터 IP의 확장은 특정 기업이나 일부 아티스트에만 머물지 않는다. 업계 전반에서 캐릭터를 활용한 비즈니스가 다양한 방식으로 넓어지고 있으며, 이제는 K팝 팬덤을 넘어 글로벌 컬렉터 시장까지 겨냥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라부부, 크라이베이비, 스컬판다 등 캐릭터 인형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어온 팝마트(POP MART)는 K팝 아티스트 IP를 기반으로 한 신규 라인업 '팝스타(POP STAR)'를 출시했다.
첫 주자로는 에스파(aespa)가 선정됐다. '에스파 플러피 클럽 시리즈'는 카랑이, 젤블냥이, 뭉탱이, 뤠 등 각 멤버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캐릭터 코스튬과 심볼 목걸이 참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단순한 팬 굿즈를 넘어 '소장용 캐릭터 토이'로서의 성격을 강화한 사례다.
실물 굿즈를 넘어 디지털로, 게임 속으로 스며든 K팝 캐릭터
르세라핌 로블록스 콜라보레이션 / 로블록스
K팝 캐릭터와 아티스트 IP의 무대는 오프라인 굿즈 시장을 넘어 디지털 세계로도 뻗어가고 있다. 팬들이 머무는 공간이 점점 다양해지는 만큼, 아티스트 IP 역시 팬들의 일상 동선과 취향에 맞춰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
르세라핌(LE SSERAFIM)은 글로벌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와 손잡고 인기 롤플레잉 게임 'Berry Avenue' 내 서울 맵에서 정규 2집 리드싱글 'CELEBRATION' 관련 요소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구현했다.
팬들은 가상 공간 안에서 아티스트의 음악과 콘셉트, 세계관을 게임처럼 즐길 수 있었다. 이는 글로벌 팬들과 기존 게임 유저가 같은 공간에서 아티스트 IP를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의 엔터테인먼트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처럼 K팝 캐릭터는 이제 실물 굿즈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프라인 팝업에서는 만지고 소장하는 즐거움을 주고, 온라인과 게임 플랫폼에서는 참여하고 체험하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팬들은 캐릭터를 통해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더 오래, 더 자주, 더 가까이 만난다. 캐릭터가 팬덤 경험의 '연장선'이자 '새로운 입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K팝 캐릭터 IP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K팝 아티스트에게 '캐릭터'는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를 대중에게 가장 친근하게 전달하는 핵심 브랜딩 수단이 됐다"며 "팬덤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캐릭터에 독자적인 서사를 부여할 수 있는 IP 기획력이 향후 K팝 비즈니스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캐릭터 IP가 아티스트 인기에 기대 단기 굿즈 소비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서사와 지속적인 콘텐츠 운영이 필요하다. 팬덤 내부의 친밀감을 유지하면서도 대중 소비재로 확장할 수 있는 균형감이 향후 K팝 캐릭터 IP의 과제로 꼽힌다.
결국 K팝 캐릭터의 성장은 팬덤 산업이 얼마나 세밀하고 입체적으로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