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교 육상대회에서 트랜스젠더 선수가 여자부 우승을 휩쓸자 주최 측이 2위 선수에게도 공동 금메달을 수여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경기장 안팎에서 성별 공정성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나온 고육책이다.
지난 16일 뉴욕 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교학연합회(CIF) 남부 지역 고교 육상 챔피언십 결선이 열린 모어파크 경기장에는 관람객 2000여 명이 몰렸다.
이날 관중의 시선은 주루파 밸리 고등학교의 트랜스젠더 여학생 AB 에르난데스(17)에게 쏠렸다.
에르난데스 / CA Post
에르난데스는 여자 멀리뛰기, 높이뛰기, 세단뛰기 종목에 출전해 압도적인 기량으로 정상에 올랐다. 멀리뛰기에서 6.21m를 기록해 2위 지아나 곤잘레스(5.79m)를 여유 있게 따돌렸고, 높이뛰기에서도 1.72m를 넘으며 선전했다.
경기가 끝나자 메달 수여식장 분위기는 급랭했다. 일부 여성 경쟁 선수들은 시상대에서 에르난데스와 거리를 두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세단뛰기 2위를 차지한 말리아 스트레인지 등 일부 선수는 아예 시상대에 오르지 않고 시상식을 거부했다. 높이뛰기 3위를 기록한 리스 호건과 에르난데스 사이에도 경기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등 선수들 간의 냉랭한 기류가 포착됐다.
거센 반발을 의식한 CIF 조직위원회는 이례적인 처방을 내놨다. 에르난데스가 우승한 종목에서 바로 뒤이어 결승선을 통과한 생물학적 여성 선수들에게도 공동 금메달을 지급한 것이다. 이에 따라 높이뛰기 2위인 귄네스 뮤레이카가 에르난데스와 함께 시상대 맨 위 칸에 나란히 서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에르난데스가 이번 대회에서 다른 여성 선수와 함께 시상대에 선 것은 이 순간이 유일했다.
관람석을 메운 학부모와 활동가들은 이번 조치가 여성 스포츠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에르난데스와 귄네스 뮤레이카가 시상대에 오른 모습 / CA Post
분홍색 '여자 스포츠를 보호하라' 셔츠를 입고 딸 올리비아 비올라를 응원하러 온 트레이시 하우턴(55)은 "이것은 여성의 공정성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라며 "내 딸은 여성 운동선수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으며 이는 매우 단순한 원칙이자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올리비아의 아버지 후안 루이스 비올라 역시 "내 딸이 이 문제를 위해 앞장서서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며 "아이들을 위해 싸워야 할 어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정부와 체육 관계자들을 비판했다.
경기장을 찾은 이들은 미국 교육기관 내 성차별을 금지한 연방법 '타이틀 나인(Title IX)'을 언급하며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부에 출전하는 현 상황이 여성 체육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관중 메리 데이스(60)는 "이 상황은 새로운 형태의 여성 혐오"라며 "우리는 타이틀 나인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워왔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캘리포니아 교육감 공직에 출전한 칭노밸리 통합학구 교육위원회 손자 쇼 의장은 "생물학적 남성이 또다시 여자 육상 종목 시상대를 휩쓸며 딸들의 노력을 가로채는 사회가 됐다"며 "캘리포니아주 법안인 'AB 1266' 등이 타이틀 나인을 위반해 여성 선수들의 기록, 장학금, 챔피언십,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에르난데스 / CA Post
CIF 측은 지난해 주 정부 결선부터 트랜스젠더 선수가 출전할 경우 생물학적 여성 선수의 순위를 공식 순위표에서 한 단계씩 올려주고 차상위 선수에게도 챔피언십 출전 자격을 부여하는 시범 정책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현장 지도자들에 따르면 이 정책은 이번 포스트시즌 남은 기간에도 계속 적용될 예정이다. 미국 고교 스포츠의 성별 논란은 지난해 에르난데스가 주 결선 자격을 획득하면서 전국적인 쟁점으로 부상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것은 불공정하며 여성과 소녀들을 모욕하는 처사"라고 비판한 바 있다.